사유리의 '워킹맘 다이어리'

[이슈 인사이드 | 문화] 이서현 동아일보 오피니언팀 기자

이서현 동아일보 오피니언팀 기자

방송인 사유리씨와 그의 아들 젠의 예능 출연을 두고 설왕설래가 한창일 때 한 캐나다 드라마가 떠올랐다. 넷플릭스를 통해 볼 수 있는 ‘워킹맘 다이어리(workin’ moms)’다. 심심한 제목에 한 번 놀라고, 장르가 다큐멘터리인줄 알았는데 시트콤이라니 한 번 더 놀랐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2017년 시즌1을 시작으로 각국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다섯 번째 시즌까지 제작이 확정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고된 육아로 사리분별이 어렵던 시절 홀린 듯 넷플릭스를 클릭해 ‘정주행’을 시작해보려던 참이었다. 첫 화를 보니 역시나 제목 그대로 캐나다에 사는 여러 워킹맘들의 짠내 가득한 고군분투를 다룬 드라마였다. 몰입을 방해한 것은 뜻밖의 요소였다. 인종, 언어, 종교를 포함한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다문화의 ‘모자이크’를 내세우는 캐나다 드라마 아니랄까봐 다양한 피부색, 문화적 배경을 지닌 캐릭터가 등장한다. 싱글 대디와 레즈비언 커플도 극 전개에 비중 있는 역할을 차지하는데, 다양성을 의식한 이런 구성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으로 허접한 스토리를 감추려는 제작진의 의도인가’하는 얕은 의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 드라마에는 극심한 산후 우울증을 겪거나, 너무나도 일을 사랑해 괴로움을 겪는 엄마가 등장한다. 아이보다 스스로를 더 사랑해 내적 갈등을 겪는 엄마, 그런 이유로 가족을 잠시 떠난 아내를 대신해 아기띠를 두르고 일을 하는 아빠도 등장한다. 일과 가정의 완벽한 양립, ‘모성’에 대한 강요, 직장 내 차별, 산후우울증, 남편을 비롯한 다른 가족 구성원과의 양육 분담을 둘러싼 갈등 등을 담은 이야기를 눈물과 웃음으로 녹여냈다.


시즌 하나를 순식간에 다 보고 나니 등장인물의 피부색이나 아이를 양육하는 사람의 성별, 성적 지향 같은 것은 기억나지도 않았다. ‘싱글 대디’나 ‘전문직 다둥이 맘’ 같은 구분을 떠나, 자기 자신을 지키고, 일을 지키고, 한 생명도 잘 길러내길 소망하는 사람들의 분투기만 남았다. 이 드라마의 제작자이자 주연으로 각본도 쓴 캐서린 라이트만은 아이를 낳고 일을 하며 겪은 자신의 경험을 모든 캐릭터에 조금씩 녹여냈다고 한다.


‘자발적 비혼모’의 길을 선택해 아들을 낳은 방송인 사유리씨가 이 드라마의 한 가정으로 출연했다면 어땠을까. 국적도, 꾸린 가정의 모습도 다르지만, 각각의 엄마들에 내 모습을 투영한 것처럼 어떤 면에서든 공감했으리라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사랑과 신뢰가 필요하고, 이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양육의 본질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만들어 나갈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기대된다. 그의 출산과 육아로 ‘정상 가족’에 대한 논의가 촉발되는 것 또한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다. ‘가족’이란 엄마·아빠·아들·딸 같은 구성 요소만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님을, 사랑과 신뢰가 결여된 가족이 어떤 파국을 맞이하는지, 우리는 최근까지 이어진 수많은 사건 사고 기사들로 목격해왔다.


‘비혼모의 출산을 부추기는 지상파 방영을 중단하라’는 청원보다 더 시급한 일이 있다. ‘이상한 정상가족’을 강요하기보다 가족의 본질인 사랑과 희생, 신뢰를 되찾는 일이다. 사유리씨의 ‘워킹맘 다이어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을 담은 이야기로 가닿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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