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30일 시행된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워싱턴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미국 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미국시간으로 지난달 15일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화상 청문회를 개최했는데, 이 자리에서는 대북전단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는 비판론과 함께 한국 국회에 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런 일은 한 번으로 그칠 것 같지 않다.
대북전단법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 시각 매개물 게시, 전단 등을 살포할 경우 최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국내외의 비판론자들은 대북전단법이 북한체제 비판에 재갈을 물리고 북한 주민들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악법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대북전단법은 한민족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믿는다.
인권을 거론할 때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인류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원칙과 함께 국가·지역의 현실에 따라 달리 적용돼야 하는 특수성이 있다. 강대국이 보편성만 강조하면서 특정 국가를 압박하면 부당한 내정간섭이 되고, 독재정권이 자국의 특수성만 강조하면서 보편성을 외면하면 자국민에 대한 억압으로 귀결된다.
남북의 군사적 긴장이 상존하는 한반도에서는 인권의 보편성과 함께 갈등 완화와 평화 유지라는 특수하고도 절박한 가치를 수호하는 방향으로 인권 문제를 다뤄야 한다. 태평양 건너편에 있는 미국 정치인들의 눈에는 풍선을 날릴 자유가 무척 소중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한반도에 터를 잡고 사는 한민족에게는 생명권과 생존권이 최우선의 가치이자 기본권이고, 이를 지키려면 평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남북한 사이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군사적 충돌을 유발할 수 있는 행위는 이 땅의 특수성을 고려해 어느 정도 제약하는 것이 불가피한 것이다.
더군다나 풍선에 매달려 북한으로 향하는 전단에는 북한 지도부를 겨냥한 낯 뜨거운 포르노성 합성사진이 다수 포함된 적도 있는데, 이런 전단이 북한 민주화나 북한 주민의 알권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대북전단을 날리려는 탈북민 단체와 그 관계자들의 언로가 막혀있다는 증거 역시 어디에도 없다. 굳이 풍선을 날리는 수고를 하지 않더라도 집회와 시위, 유튜브, 블로그, 신문과 방송 등 언론매체를 이용해 얼마든지 자신들의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전단 살포를 주도하는 탈북인사가 수시로 방송사 카메라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미 의회의 청문회 소식을 접하면서 해묵은 의문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미국이 진정으로 북한 인권상황을 염려한다면 왜 북한과 대화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 말이다. 인권을 무기로 삼아 전단 살포를 독려하기보다는 북미관계를 정상화하고 직접 마주 앉아서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