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살장의 보기 드문 청년들, 이젠 안녕

[이슈 인사이드 | 스포츠] 김형준 한국일보 문화스포츠부 기자

김형준 한국일보 문화스포츠부 기자

최근 스포츠계는 풋살 경기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로 뜨거웠다. 경기를 하던 선수가 느닷없이 영화 ‘소림축구’에서나 나오는 날아 차기로 상대 선수를 가격하고, 앉아있는 상대 선수 손을 밟고 지나간다. 화를 제어하지 못한 또 다른 선수는 상대 선수와 심판을 밀치거나 폭언했다. 지난 15일 국내 풋살리그인 F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벌어진 경기 중 폭력 사태 얘기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온라인 동영상 생중계에 노출됐다.


근래 보기 드문 ‘막장 플레이’ 주인공들은 경기 막판 패색이 짙어진 제천FS 선수들이다. 상대팀인 고양불스풋살클럽 선수들의 도발도 없었던 터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된 장면을 본 이들의 충격도 컸다. SNS와 커뮤니티 댓글엔 이들의 이런 행동이 처음이 아니란 증언들이 줄을 이었고, ‘저 팀과 풋살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남긴 격투기 선수 김동현의 댓글에 네티즌들이 열광했다. 그만큼 이번 사안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컸단 얘기다.


사건을 뜯어보면 승복의 가치와 페어플레이 정신을 크게 훼손한 이번 사건의 심각성은 드러나는 것보다 크다. 가해 선수들이 유소년 축구클럽 지도자를 겸하고 있단 점에서다. 이 가운데 한 선수는 지난해까지 서울시내 한 자치구에서 방과후 강사를 맡고 있고, 다른 선수들도 어딘가에서 ‘선생님’으로 불리며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도 이들의 엄벌을 촉구하는 글이 올라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포츠지도자가 어린 선수들 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3급 축구심판 자격을 따 처음 실전 경기에 나선 2006년, 경북 경주시에서 열린 전국단위 초등부 축구대회에서 지도자들로부터 욕설 섞인 항의를 받은 아픈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판정이 틀렸을 때야 억울함을 토로할 법 하지만, 어떤 판정이 내려지든 불리할 때마다 자신에게 가까이에 있는 부심이나 대기심에게 화풀이하던 일부 지도자들 모습이 신인 심판인 내겐 꽤나 큰 충격이었다.


지도자가 화를 내면 뒤에 있던 선수의 부모들이 동조하고, 어린 선수들은 그게 옳은 줄 알고 그대로 따라 한다. 신인 심판들은 △상대적으로 경기장이 좁고 △선수들의 경기 진행이 느리고 △대회 성적이 상급학교 진학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저학년(1~2학년) 경기에 배정됐던 터라 아쉬움은 더 컸다. 저학년 선수들이 승부에 매몰되기보다 한창 축구의 재미와 페어플레이 정신을 먼저 알아가야 할 때란 생각에서였다.


그때 그 지도자들은 왜 그래야 했을까. 3박4일의 일정 동안 매일 한 차례 이상 겪은 씁쓸한 장면의 이유를 훗날 다른 지도자들에게 물으니 거의 같은 답이 돌아왔다. ‘심판들 탓으로 돌려야 지더라도 선수와 부모들에게 할 말이 생기기 때문’이란 이유였다. 대다수 지도자 급여가 부모들 지갑에서 나오는 구조 탓이라고는 하지만, 어린 선수들이 승복의 가치를 배우지 못한 채 성장할 미래가 암울했다.


15년 전에 비해 성적지상주의를 지양한 축구클럽들 저변이 확대되고 유소년 주말리그제 시행 등으로 팀 성적에 목 메는 분위기가 많이 줄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결과에만 눈이 먼 어른들의 볼썽사나운 행동은 지금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가해자 3명 중 두 명은 최근 한국풋살연맹으로부터 영구제명 징계를 받았지만, 과거에도 비슷한 이력으로 퇴출됐다가 시간이 흘러 슬그머니 돌아온 사실이 최근 드러나 아픔을 더한다. 그릇된 온정주의도 바로잡을 기회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