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정부과천청사에 위치한 방송통신위원회 앞에 흰색 텐트가 들어섰다. 전국언론노조 경기방송지부의 농성장이다. 거리로 나선 이들의 요구는 단 하나다. 방통위에 경기방송의 새 사업자 공모를 내달라는 것이다.
경기지역의 유일한 민영 지상파 라디오 방송사였던 경기방송은 지난해 3월30일 방송을 중단했다. 당시 대주주는 경영상 어려움, 노사 갈등, 방통위의 경영 간섭 등을 이유로 들었지만 납득하는 구성원은 없었다. 1997년 설립 이후 20여년간 흑자를 기록해온, 경기도민의 사랑방이었던, 언론노동자들의 일터였던 한 방송사가 단 4명이 참석한 이사회의 결정으로 한순간에 폐업했다. 지상파 방송사가 방송면허를 자진 반납한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경기방송 구성원들은 그해 5월 전부 해고돼 방송사를 떠나야했다.
그로부터 1년 3개월이 흐른 현재, 경기방송의 미래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방통위는 새 사업자를 공모해야 하지만 시간을 끌고 있다. 지금껏 경기방송 관련 안건이 방통위 전체회의에 상정된 적도 없다.
지난 7일 방통위 앞 농성장에서 만난 장주영 언론노조 경기방송지부장은 “저희의 바람은 새 사업자로 누굴 선정해달라, 누군 아니다 이런 거창한 게 아니다. 그저 공모 일정을 정해달라는 것”이라며 “‘안정적인 청취권 확보와 고용승계를 위해 좋은 사업자를 찾겠다’는 방통위 약속을 믿었지만 더는 버티기 힘들어 여기에 텐트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방송 중단이 1년 넘게 이어지면서 현실적인 어려움도 커졌다. 다시 방송을 시작할 때까지 생계 수단을 찾기도 어렵다. 그동안 식당이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조합원들도 있지만 텐트 농성을 시작하고선 손을 놓았다. 조합원 13명이 돌아가며 농성장을 지키기 위해서다.
장주영 지부장도 생계가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5살 큰 아이와 돌이 갓 지난 둘째, 육아휴직 중인 아내를 보면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장 지부장은 “방통위가 이달이 아니라 12월이라도 새 사업자 공고를 내겠다고 확정해주면 당장 텐트를 걷을 수 있다”며 “일정만 나오면 그때까지 임시 일자리를 찾아볼 수 있지 않나. 저희는 그만큼 절박하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방송지부의 피켓팅에는 청취자 주형준씨도 참여했다. 그의 손에는 ‘듣고싶어 돌아와요 99.9MHz’가 적혀 있었다. 주씨에게 경기방송은 특별하다. 전국을 다니며 일한 그는 6년 전 경기도에 왔다가 우연히 경기방송 라디오를 듣고 애청자가 됐다. 경기방송을 계속 듣고 싶어 경기도 수원에 자리 잡았다. 손수 ‘경기방송을 살려달라’는 깃발을 만들어 자전거에 달고 다닐 정도로 열성팬이다. 주씨는 “하루 종일 경기방송 라디오를 들으면서 지역소식을 접하고 디제이, 제작진, 다른 주민들과 소통해왔는데 지금은 들을 라디오가 없다”며 “저 말고도 경기방송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애청자 밴드에는 경기방송을 그리워하는 700여명이 모여 있다. 경기방송지부가 요구하는 ‘경기도민의 청취주권 회복’의 한 근거다. 장 지부장은 “저희 방송은 청취자들과 인간적으로 교류했다. 작은 고민, 사는 이야기를 사연으로 보내면 빠짐없이 소개했고 정말 형, 누나, 동네 친구 같은 사이였다”며 “애청자들이 지금까지 남아 계시면서 경기방송을 살려달라고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청취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순간 그의 눈에 눈물이 괴었다. “방송에 복귀하면 이제 다시는 안 헤어질 거라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저희 안 떠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청취자들뿐 아니라 우리 언론계를 위해서라도 경기방송은 다시, 제대로 일어서야 한다. 민영방송 사주 리스크는 경기방송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 지부장은 ‘경기방송이 나쁜 선례가 되선 안 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생계절벽 앞에서 불안하지만, 방송의 공적 가치를 지켜야한다는 사명감이 생겼어요. 다른 민영방송사에서 ‘너희 말 안 들으면 경기방송처럼 하겠다’는 소리를 들은 순 없잖아요. 저희가 좋은 선례가 돼야죠. 민영사주의 최악 형태인 지금 사태를 잘 극복해야 새로운 기준점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