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초 커뮤니티 밖에도 청년이 있다

[이슈 인사이드 | 젠더] 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

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

“언론들 대체 왜 그래요?”


지난 5월에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라는 책을 낸 뒤에, ‘20대 남성’ 논란 등에 대한 강의를 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내겐 ‘언론’에 관한 질문이 가장 많이 쏟아졌다. ‘페미니즘 백래시’ 현상을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하는 보도가 많은데, 왜 그러느냐, 어떻게 해야 언론이 바뀌느냐 등의 내용이었다.


그럴 때마다 포털에 종속된 산업구조, 조회 수 지상주의, 조직 내 젠더 감수성 미비 등 수많은 문제가 중첩되어있다며, 겨우 설명을 했지만 항상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해법이 무엇인지 제시하기가 현재로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기자협회보의 <백래시를 ‘남혐 논란’으로 보도하는 언론들> 기사를 보면서 크게 공감했다. ‘남성 비하 손가락’ 논란(?) 당시 대체로 많은 언론사가 남초 커뮤니티의 앞마당을 자처했다. ‘집게손 모양’ 포스터를 만든 곳을 하나하나 찾아내는 황당한 행태를 보였음에도, 이를 사실상 실시간으로 보도, 아니 중계를 해줬다. 여초카페에서 많이 쓴다는 이유로 ‘오조오억’, ‘허버허버’라는 말이 금지어로 분류되고, 집게손 모양이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상황은 사실상 남초 커뮤니티와 언론의 공조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여전히 수많은 언론은 남초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억지 주장들을 언제나 ‘논란’이랍시고 독자들에게 하나하나 전달하고 있다. 심지어 표면적으로는 말만 옮기는 방식의 ‘객관’을 가장하면서, 윤리적 책임마저도 면피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생산되니 더욱 문제다.


박성민 청와대 청년 비서관 임명 이슈에서도 ‘공정’ 운운하는 커뮤니티 발 보도가 속출했다. 일반직과 별정직을 구분하지 않고 ‘발탁 과정’을 문제 삼거나, 박 비서관이 과거 페미니즘 관점에서 한 발언을 비판하는 말들이 여과 없이 기사화되고 있다. 남초 커뮤니티에서 비난을 하면, 곧 그것이 ‘청년의 생각’으로 포장된다.


하지만 청년은 단일하지 않다. CBS 노컷뉴스 ‘씨리얼’에서 제작한 ‘용돈 없는 청소년’ 기획은 청년 빈곤 문제를 다루며, 현재 언론이 주도하는 남초 커뮤니티 혹은 ‘인서울 4년제 대학생’ 중심의 청년 담론이 얼마나 협소한지 증명한다. 1편 <10대 때 받는 용돈 차이가 내 인생에 끼치는 영향>에 나온 출연자들은 특성화고 실습에서 배를 탔다가 다짜고짜 맞았던 경험, 어린 나이부터 주방에서 실습과 알바 등을 반복하다가 팔에 인대 파열이 왔음에도 쉬지 못하는 상황, 라이더 친구의 죽음, 자신이 겪은 직장 내 성희롱, 산업재해 등을 담담하게 고백한다. 이 기획은 2편 ‘청소년 채무’와 3편 ‘가난하면 예체능은 사치인가요’라는 주제로 이어지면서 문제의식을 더한다.


언론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 ‘공정 담론’ 밖에 실제 청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씨리얼의 기획은 매우 훌륭했다. 남초 커뮤니티 밖에도 청년이 존재하고 있고, 언론은 그들의 삶에 얽혀있는 구조적 문제를 조명할 책무가 있다. 이처럼 중요한 사실을 우리가 너무 오래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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