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반구의 모든 대륙이 불에 타거나 물에 잠겼다. 지난 6월 캐나다에서 시작된 폭염은 산불로 확산됐고, 7월엔 중국과 독일, 영국 등지에 내린 폭우로 수백 명이 사망했다. 7월 말 시작된 터키 산불과 함께 그리스와 이탈리아, 시베리아 등에서도 대규모 산불이 이어졌다. 며칠 전 터키에선 산불 진화가 끝나자마자 북부지역에 내린 홍수로 수십 명이 사망했다. 전문가들은 전례없는 재해의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지목했다.
기후변화가 초래한 기상이변은 이제 언론사의 여름 계절성 기사 단골 소재로 자리잡았다. 갖은 피해들이 사진과 영상기사로 자극적으로 보도된다. 올여름 주요 방송사들이 유튜브 등에서 뽑아낸 ‘생지옥’, ‘지구 종말’, ‘재앙’ 등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은 작게는 수만에서 많게는 수백만의 조회수를 찍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후속 보도에서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얘기해주는 곳은 없었다.
기후위기의 단면을 비추는 것만으로 언론이 그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정작 필요한 역할들을 언론이 못하진 않았나. 언론 보도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시민들의 인식을 살펴보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지난해 한국갤럽이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기후변화 인식조사 결과 응답자의 94%가 기후변화를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절반이 넘는 54%가 ‘기후변화를 막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고 답변했다. 전세계 응답자의 평균인 40%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또 다른 조사결과도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30개국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탄소배출 저감에 가장 효과적인 활동으로 ‘재활용하기’를 꼽았다. 하지만 설문 항목 9개 중 재활용의 탄소배출 저감 효과는 7위에 불과했다.
결국 기후위기를 중계할 뿐 가야 할 곳을 알려주지 않는 방관자적인 언론의 보도행태가 위와 같은 인식을 만든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언론이 방관자의 역할에만 머물러선 기후위기를 극복해낼 수 없다. 기후위기가 불러올 거대한 파도들이 우리가 쌓아올린 민주주의를 매년 위협할 것이다. 하나는 갈수록 자주, 강하게 몰아칠 올여름과 같은 각종 재해들이며, 또 다른 하나는 탈탄소 사회로의 급격한 산업전환이 초래할 혼란이다. 천문학적인 비용과 더불어 전자는 무기력감과 비관으로, 후자는 저항과 갈등으로 부딪혀올 것이다.
우리 사회가 암담한 현실을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며 나아가기 위해선, 언론의 안내자 역할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전하더라도 시민들의 대응 의지를 꺾지 않도록 남아있는 길을 보여줘야 하며, 수면 밑의 산적한 과제들을 끌어올려 단기적으로는 많은 비용이 들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그 길이 가장 최적의 길임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 수면 밑의 과제들이 한국의 기후 대응을 가로막고 있다. 작년 가을 발의된 탄소중립 기본법은 아직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고, 한국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현 목표상 2030년쯤 전세계 1위로 올라설 예정이다.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30%를 차지하는 석탄발전소는 퇴출 시한을 정하지 못한 채 아직도 6기가 신규로 건설되고 있다. 대안인 재생에너지의 발전량은 OECD 국가 중 꼴등이다.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건 그 길을 안내하는 언론의 역할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다. 우리가 정말 늦지 않도록 사회에 길을 보여주는 책임있는 보도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