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지·김다은 기자는 최근 시사IN 728호·729호를 통해 ‘20대 여자 현상’을 분석했다. 방대한 설문을 설계하는 일부터 시작이었다. 20대 여성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진행했다. 20대 남녀, 20대와 다른 세대 간의 상이한 인식을 드러낼 가설(질문)을 만드는 작업이다. 여기 협업한 전문가들이 제안한 문항이 추가된다. 질문만 320개에 달해 좀 빼기로 조율한다. 그렇게 두 달. 20대 여성의 젠더, 정치인식, 사회적 개방성, 연대의식 등을 엿볼 수 있는, 문항수만 238개에 달하는 설문 설계가 마무리됐다. 지난 7월말~8월초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웹조사를 진행해 결과를 얻었고 기사를 썼다.
김은지 기자는 지난 3일 인터뷰에서 “계속 저희 안에선 과제로 남아있던 부분”이라고 했다. 지난 2019년 시사IN은 ‘20대 남자 현상’ 기획을 선보였지만 ‘20대 여자 현상’은 “가설을 찾지 못해 미뤄왔다.” 당시에도 208개 설문문항을 만들어 ‘궁금한 걸 다 물어보는’ 웹조사 방식을 택한 터 “따라갈 수 있는 발자국이 있어 상당 힌트”를 얻었지만 사실 “얼마나 빡센 일인지 모르고 덤볐다.” 그는 “4·7 재보궐 선거결과가 가설을 못 찾았다는 핑계를 더 이상 댈 수 없게 만드는, 강제로 밀어내 준 셈이 됐다”고 기획배경을 설명했다.
‘20대 여자’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정치세력이었다. 4·7 재보궐선거 당시 방송 3사 공동예측조사위원회 출구조사에서 20대 여자는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에게 가장 적은 표(40.9%)를 준 집단이었다. 15.1%는 아예 거대 여야가 아닌 제3정당에 투표했다. 20대 남자가 오 후보를 많이 지지(72.5%)해 조명받고 이후 ‘이준석 현상’으로 다시금 기성 정치에 영향을 끼치는 성별과 세대로 주목받았다면 20대 여자는 아니었다. 김다은 기자는 “개인적으론 주위 페미니스트 친구들이 생각하는 페미니즘만 해도 각각 다른 양상인데 20대 여성이 하나의 목소리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집단인지 호기심이 있었다. 적어도 정체는 알 수 있겠다 싶었다”고 했다.
기사는 20대 여자가 사회문화적 이슈에 다른 어떤 성별·연령별 집단보다 진보적인 그룹이란 점을 확인한다. 다만 정치참여 효능감을 느끼지 못해 “부유하고 있는 심판자”에 머문다고 적는다. 사회적 소수자에 가장 우호적이지만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트랜스젠더를 배제해선 안된다’는 비율은 평균 이하였고, ‘난민’ ‘조선족’ 등에 대한 긍·부정 인식 역시 전체평균과 비슷하거나 낮게 나타나는, 예상 밖 결과도 나타났다. 성범죄 피해 불안이 반영됐을 소지가 크다. “물질주의 성향, 성공에 대한 불안도 크게 나타났어요. 가부장제 내 남성과 관계를 맺어 안전을 도모했던, 여성이 자기를 지키는 생존전략이 경제적 독립, 동질화할 수 있는 집단과 연대 등으로 달라졌다고 느꼈습니다. 진보적이라 물질주의 욕망이 적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시대를 사는 가장 평범한 청년의 욕망이란 생각도 했고요. 보고 싶은 대로 보면 안 되는구나 얘길 많이 나눴어요.(웃음)”(김다은)
처음 해본 웹조사에 “그 질문을 넣었어야 하는데” 같은 아쉬움은 남는다. 특히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판단으로 대선 후보별 20대 여성의 호감도 등을 물은 10여개 문항을 사용 못한 게 가장 아쉽다. 그렇다고 기사의 함의가 퇴색되진 않는다. 20대 여성이란 특정 성별과 연령을 넘어 향후 우리나라 진보·보수 이념 지형의 균열을 예단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초자료란 점에서 그렇다. 기사는 ‘페미니즘’은 20대의 사회정치적 인식을 결정하는 주요 틀로 봤다. 또 진보·보수에 대한 전통적 준거 자체가 20대에겐 유효하지 않다는 점도 보여줬다.
결국 현재와 미래,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거대한 문제가 돌아온다. 지난 2019년 조사에서 20대 중 강한 ‘안티 페미’와 ‘페미’ 비율이 각각 25.9%, 0%였다면 올해 이 수치는 각각 33.6%, 7.6%로 더 극단화됐다. 기사에서 지적했듯 ‘오조오억’이 남성혐오 단어란 주장, ‘GS25 포스터 논란’처럼 별다른 확인 없이 어떤 목소리가 과대대표되는 일은 지금도 벌어진다. 이런 “논란 자체가 특정 집단을 정치적으로 응집시키는 데 긴요”한 시대다. 언론과 정치권의 할 일이 적지 않다.
2009년 시사IN에 입사해 정치, 사회팀을 거쳐 현재 정치팀장을 맡고 있는 김은지 기자는 “조사결과에 ‘이건 윤리학이 아니라 물리학으로 봐야될 이야기’란 편집국장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게 저희 역할이라 생각한다. 특히 정책을 고민하는 분들이 관심 있게 봐줬으면 싶다”면서 “20대 남녀의 임금 격차에 대한 인식차가 컸는데 관련 기획을 이어 준비 중”이라고 했다.
2011년 CBS 라디오PD로 입사해 시사뉴스 프로그램을 연출하다 지난 6월 시사IN으로 이직한 김다은 기자는 “기사를 읽은 여자분이 눈물이 났다는 말씀을 주신 게 기억난다. 큰소리로 말하진 않지만 ‘그래, 우리 여기 있어’라는 걸 느꼈다고 하셔서 저도 감동 받았다”며 “여기 무엇이 있는지를 거듭 보여주는 작업이 언론이 해야될 일 중 하나인 것 같다. 갈등을 좁히려면 아무튼 서로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