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공영방송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선다. 이번 쟁점은 KBS 수신료다. 국민의힘 미디어특별위원회가 지난달 24일 성명을 통해 “KBS의 수신료 징수 문제에 대해 근본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 시발점이 됐다. 미디어특위는 “TV 보유 가구가 줄어들고 있고,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과 “공정성 시비와 방만 경영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현실을 이유로 들어 폐지까지 염두해 수신료를 손보겠다고 했다.
공영방송이란 방송의 목적을 영리에 두지 않는, 공공을 위한 방송을 말한다. 기업의 이윤이 목적인 상업(민간)방송과 대척점에 있다. 공익에 근거하기 때문에 대중뿐 아니라 소외된 계층을 위한 프로그램도 편성해 시청률·수익 손실을 피하려 상업방송이 제작하지 않는 방송을 만들 의무도 있다. 이 같은 역할에서 시청자에게 수신료를 징수하는 당위를 갖게 된다. ‘수신료의 가치’에는 권력과 이윤에서 독립해 국민에게 필요한 방송이 되어야 한다는 책무가 담긴 셈이다.
이 같은 측면에 보면 여당이 수신료를 폐지하거나, 무조건 징수하지 말고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에게만 분리 징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성이 있다. 한국의 공영방송은 시청률뿐 아니라 시대를 반영한 콘텐츠 생산, 신뢰도 등 전방위적으로 위기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언론으로서 정도(正道)를 걷고 있는지는 시청자 눈에 성이 차지 않는 듯하다. 수신료를 받는 만큼 각종 미디어 플랫폼이 쏟아내는 콘텐츠와 견줄 수 없는 양질의 방송을 제공해주길 바라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수신료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에 크게 반박하는 여론이 형성되지 않다는 점은 KBS 구성원들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는 데는 외부의 요인도 크다. 그동안 정권을 잡은 쪽은 KBS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에 영향력을 키우려고 무수히 많은 시도를 해오지 않았는가. 독립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일이라고 포장했지만, 이는 ‘정치적 카드’였다. 따라서 수신료 폐지와 수신료 인상안은 결과는 다르지만, 의도는 같다. 공영방송이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하거나 지대한 도구라고 생각될 때는 ‘인상안’을, 상황이 달라져 예전만큼 힘이 없다고 판단될 때는 ‘폐지안’ 카드를 내밀뿐이다.
지난 2014년 KBS 이사회가 월 4000원 수신료 인상안을 의결했는데 당시 다수의 여당 추천 이사들이 단독 의결을 강행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지난해 12월 방송통신위원회가 KBS 수신료를 월 2500원에서 3800원으로 인상하는 조정안을 의결해 국회로 넘겼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이번엔 수신료 폐지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에 KBS 수신료 인상 절차에서 KBS 이사회는 물론 국회의 역할을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 바 있다. 수신료인상위원회 등 독립기구를 설립해 논의하자는 제안이었다. 방송법에 따라 수신료는 KBS 이사회가 심의·의결한 후 방송통신위원회를 거쳐 국회 승인을 얻어 확정한다. 어느 쪽으로든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실제로 수신료 인상은 2007년, 2011년, 2014년 세 차례 국회에 제출됐지만 한 번도 통과된 적이 없다.
공영방송 개혁은 대안 찾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경영과 의사결정 구조는 효율화하고, 제작 시스템을 쇄신해 국민이 원하는 이 시대의 공공성이 무엇인지 탐색하는 것이 먼저다. 수신료는 얼마가 적당한지, 어떻게 걷는 것이 마땅한 지는 이 논의 결과에 맞춰 따라가면 된다. 정치적인 탐색은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