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또는 동영상 촬영 시 삭제 및 퇴장조치 합니다.”
지난달 8일 서울 광진구 예스24라이브홀. 밴드 ‘화이트 스트라입스’ 리더 출신 잭 화이트의 내한공연 시작 전 흘러나온 안내방송은 경고에 가까웠다. 아이유,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빌리 아일리시, 마룬5 등 숱한 슈퍼스타들의 콘서트를 갔지만 이런 경고는 처음이었다. 앞줄 관객 스마트폰을 가져가 셀카를 찍어주거나, 동영상을 찍는 관객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노래를 부르는 등 파격 팬 서비스를 선보이는 가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휴대폰을 꺼내든 이들을 내쫓겠다는 경고라니. 공연 전부터 의아함과 반발심이 생겼다.
퇴장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화이트가 내뿜는 엄청난 에너지에 압도당해서였을까. 이날 공연에는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하는 관객이 거의 없었다. 1층 스탠딩석은 105분 동안 시종일관 컴컴했다. 반짝이는 스마트폰 불빛의 빈자리는 공중에 높이 치켜든 관객의 손들이 가득 채웠다. 2층 관객들은 박자에 맞춰 발을 굴렀고, 박수를 쳤다. 그래미상 최우수 록 노래 수상곡 ‘Seven Nation Army’가 흘러나올 때는 전주의 멜로디 ‘우우’를 1300여명의 관객이 한목소리로 불렀고, 신이 난 그는 “That’s right!‘이라고 외쳤다.
땀이 송글송글 맺힌 채 공연장을 나서며 공연 전 가졌던 의아함과 반발심은 화이트에 대한 감사함으로 바뀌었다. 그날의 경험 후 “지금까지 갔던 콘서트 중 최고는 누구였나?”를 묻는 질문에 나는 주저 없이 화이트를 꼽는다. 스마트폰 화면에 담긴 가수의 얼굴이 아닌, 무대 위 가수에 온전히 집중한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접신한 듯 흔드는 고개와 함께 흐트러지는 파란색 머리칼, 곡이 끝날 때마다 화이트가 허공에 던지는 기타 피크,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쪽 다리로 무대 왼쪽에서 오른쪽까지 뛰는 그의 움직임은 아직도 머리에 각인돼있다. 스마트폰 촬영에 급급했다면 놓쳤을 무대 위 디테일이자, 가수의 에너지였다.
스마트폰 촬영 버튼만 눌러대는 관객은 가수도 기운 빠지게 만든다. 10월15일 4년 만의 블랙핑크 국내 콘서트 현장. 제니는 공연 중반쯤 “여러분, 집에 가면 영상 다 올라와요. 오늘은 핸드폰 내려놓고 같이 즐기자. 블링크(팬덤명) 얼굴 보고 싶은데 핸드폰이랑 콘서트하는 것 같잖아”라고 말했다. 자신의 얼굴이 아닌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팬들의 모습이 아쉬웠던 모양이었다.
화이트나 제니를 보며 공연의 본질을 생각했다. 디지털 음원을 통해 온라인에서만 만나던 가수와 관객이 직접 현장에서 에너지를 교류하는 것이 공연의 최고 미덕이다.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 현장에 있었음을 SNS에 올리고 싶은 욕심도 납득이 간다. ‘인증’ 역시 누군가에게는 공연의 목적 중 하나다. 그러나 인증용 사진과 동영상은 한두 개면 충분하다. 공연 내내 모든 장면을 촬영할 필요는 없다.
화이트의 ‘국내용 경고’는 친절한 편이었다. 그는 2018년부터 공연장에서 휴대폰이 잠금 처리 되는 ‘욘더(Yondr) 파우치’를 나눠주고 그 안에 휴대폰을 넣을 것을 관객에게 요청해왔다. 엘리샤 키스, 건스 앤 로지스 등도 기존에 활용했던 파우치다. 이 파우치를 알게 된 필자는 다짐했다. 앞으로 콘서트에서 내 마음 속 욘더 파우치에 스마트폰을 넣자고 말이다. 스마트폰에 되감기될 영상을 남기느냐, 내 몸에 각인될 몰입과 전율의 경험을 남기느냐. 선택은 관객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