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캔이나 콜라캔 같은 깡통에 강한 힘을 주면 찌그러진다. 발로 세게 밟으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납작해진다. 깡통이 견딜 수 있는 힘의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어떤 형체에 일정 수준 이상의 힘이 가해졌을 때 되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변형이 일어나는 현상, 바로 ‘히스테리시스’(hysteresis)다. 우리말로는 ‘이력 현상’이라고 한다.
변화를 일으킨 물질이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비가역성’(irreversibility)과 같은 의미로 모두 물리학에서 많이 쓰는 용어다. 그런데 최근 기후위기를 연구하는 분야에서도 히스테리시스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기후위기를 비롯한 자연 현상이 점점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배출한 인위적인 온실가스가 대기 중에 누적되면서 지구의 평균온도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달 유엔 제27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 개최와 함께 세계기상기구(WMO)는 2022년 기준 지구의 온도 상승폭이 산업화 이전보다 1.15℃ 올라갔다고 발표했다. 2019년에 1.09℃에서 2021년에는 1.1℃로, 올해는 지구가 조금 더 뜨거워졌다.
이렇게 달아오르는 지구를 식히기 위해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COP27에서 막판까지 줄다리기 협상을 했다. 폐막일이 이틀이나 늦어질 정도였는데 핵심 쟁점은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에 대한 보상 문제였다. 기후위기의 책임이 적지만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개도국의 손실과 적응을 선진국이 재정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온실가스 배출을 멈춘다고 피해는 줄어들까? 그렇지는 않다. 산업혁명 이후 이산화탄소 농도는 끝없이 치솟았고 전 지구 배경대기 관측소인 하와이 마우나로아에서 이미 올봄에 420ppm 선을 넘어섰다. 산업화 이전 280ppm, 그러니까 공기 분자 100만 개 중 280개였던 탄소가 지금은 420ppm, 100만 개 중 420개로 50%나 증가했다. 대부분 인간이 사용한 화석연료가 원인이다. 이산화탄소는 한 번 배출되면 수백 년간 대기 중에 체류한다.
이례적으로 많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면서 찌그러진 깡통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기후재난에 직면했다. 올해 파키스탄에는 최악의 홍수가 발생해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고 COP27이 개최된 이집트 역시 지독한 가뭄 피해와 물 부족을 겪고 있는 나라다.
탄소중립 없이 지금 같은 고성장을 이어간다면 지구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최대 600~700ppm까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최악의 상황에서 이산화탄소를 먹어 치우는 획기적인 무언가가 발명되거나 예전처럼 농도를 줄인다고 해도 원래 기후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기후의 히스테리시스, 즉 비가역성 때문이다. 한번 고삐가 풀린 기후 시스템은 다시 대기가 정상 상태를 되찾아도 한동안 비정상적인 흐름을 보이게 된다. 탄소가 최악의 수준에서 지금 농도로 돌아왔을 때 각 지역의 기온과 강수량 등 회복 탄력성을 추정해봤더니 여전히 아프리카와 남미, 동남아, 극지역이 가장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피해가 큰 지역이 미래에도 가장 큰 희생을 치를 수 있다는 의미다.
기후위기의 부조리와 불공평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 온실가스 감축에 최대한 매진해야 한다. 앞으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450ppm에서 500ppm, 그 이상 임계점을 넘어버리면 우리 기억 속의 기후는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기후가 닥칠지 모른다. 마치 절벽 아래로 툭 굴러떨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COP27의 손실과 피해에 대한 첫 합의문 채택은 반갑지만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