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이불개(過而不改).’ 교수신문이 꼽은 올해의 사자성어다. “잘못을 하고서 고치지 않는다”란 뜻으로,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에서 가져온 말이라고 한다. 원문은 “잘못을 하고서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게 잘못이다”로 풀이된다. 잘못을 하는 것 자체보다도, 잘못을 했다는 것을 알고서도 고치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는 의미일 터다. 2022년 세밑 한국에, 안타깝지만, 안성맞춤인 말이다. 공사다망한 대통령실에서 “악의적 편집”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는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집권당 진영을 떠나 ‘올해의 사자성어’가 정권에 우호적이었던 적은 없음을 밝혀둔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이 모자란 2022년이 저문다. ‘올해의 10대 뉴스’로 꼽을 사건사고가 언론계에서만도 차고 넘쳤다. 기대가 지나쳤던 걸까. 진영을 떠나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취재진들은 일말의 기대감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대통령의 일명 ‘도어스테핑(doorstepping),’ 즉 출근길 문답의 약속이 준 기대감이다. ‘퇴근길 시민과 맥주 한 잔’ 약속이 빈말에 그친 문재인 정부와 이번 정부의 차별화 포인트로 홍보도 많이 됐다. 출근길 문답은 그러나 크고 잦은 해프닝 끝에 결국 지난달 중단됐다. 윤 대통령이 지난 5월 취임 후 도어스테핑을 한 것은 65차례. 횟수 자체론 고무적일 수 있으나 결국, 용두사미였다.
중단의 타이밍을 상기하면 안타까움은 배가 된다. 대통령실이 도어스테핑을 중단한 건 지난달. 9월 말, MBC가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을 최초 보도한 뒤부터 대통령실이 취재진과의 전쟁을 시작한 직후라서다. 대통령실은 급기야 지난달엔 MBC 취재진을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하는 미증유의 조치를 했다. 취재 당한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취재할 권리를 박탈한 것이다. 자유에의 신념,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 투철하다는 법조인 출신 윤 대통령의 말은 허언인가. 대한민국 헌법 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에 이어,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취재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그자체로 모든 취재진에 대한 겁박이다.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쓸 때마다 무의식 중에 자기검열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서다. TBS를 둘러싼 논란은 또 어떤가. 편파성에 대해선 TBS도 자성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민주적이고도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타당하다. 이렇게 당연한 문장을 쓰고 있어야 한다는 것, 이때가 과거가 아닌 2022년이라는 점에 참담함까지 느껴지는 세밑이다.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겠다는 감탄고토(甘呑苦吐)식 태도를 유지한다면, 과거 권위주의 정부의 언론관과 다를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잘못한 것을 알고도 잘못을 고치지 않는 것이 진짜 잘못이라는 과이불개의 뜻을 되새겨주기를 간곡히 요청한다.
김대중 대통령 당시의 오리무중(五里霧中, 갈피를 못 잡음, 2001), 노무현 대통령 때의 상화하택(上火下澤, 서로 이반하고 분열함, 2005)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 방기곡경(旁岐曲逕, 일을 정당하지 않은 그릇된 방식으로 함, 2009), 박근혜 대통령 지록위마(指鹿爲馬,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력을 마음대로 주무름, 2014), 문재인 대통령 아시타비(我是他非,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 2020) 등이 꼽혔다. 상당히 적확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윤 대통령의 내년을 정의할 사자성어는 무엇이 될 것인가. 고복격양(鼓腹擊壤, 백성들이 걱정이 없음)이나 태평세월(太平歲月)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민주주의의 상식이 통하는 2023년이 되기를 바란다. 정권은 권불오년(權不五年)이지만 언론의 자유는 영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