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배와 돈거래 기자 의혹' 한겨레 역대 최대위기

사장·편집국장 등 줄사퇴... 해당 기자 해고

한겨레 구성원은 지금 “창간 이후 최대 위기”를 겪고 있다. 한겨레 편집국 간부가 ‘대장동 의혹’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 최대주주 김만배씨와 9억원이라는 거액의 금전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드러나면서다.


36년간 한겨레 안에서 벌어진 사건·사고와는 “차원이 다른” 이번 사태에 한겨레 내부는 창간 이후 쌓아왔던 모든 “신뢰가 한순간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위기감, “한겨레의 존재 이유가 근본적으로 부정당했다”는 참담함이 팽배하다. 당사자가 해당 의혹 시점 이후 편집국 주요 보직을 거친 점을 고려해봤을 때 앞으로 한겨레 보도에 어떤 객관성,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겠느냐는 비통한 분위기도 전해졌다.

사진=한겨레 홈페이지 캡처.

한겨레 내부 “36년 쌓아온 신뢰, 한 순간에…”

한겨레 편집국 간부 A씨의 돈 거래 의혹은 지난 5일과 6일, SBS와 조선일보 보도로 알려졌다. 검찰이 중앙일간지 등 언론사 간부들과 김만배씨와의 금전거래 정황을 파악했다는 보도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19년 아파트 분양금 명목으로 김만배씨로부터 6억원을 전달받았다. 이후 A씨가 비슷한 시기 추가로 3억원을 받은 정황을 검찰이 발견했다는 지난 9일 후속 보도가 나오며 금액은 총 9억원으로 드러났다.


같은 보도에서 김씨와의 금전거래 정황이 알려진 한국일보, 중앙일보 등 타사 기자들보다 훨씬 큰 액수로, 한겨레 내부의 충격은 더욱 컸다.


이번 사태는 편집국장 보직 사퇴에 이어 사장, 편집인, 전무 등 경영진의 조기 퇴진 의사로 이어졌다. 9일 오전 류이근 한겨레 편집국장은 편집회의와 편집국 사내메일을 통해 “부적절한 인사를 중요 직책에 앉혔고 문제적 행동을 미리 파악하지 못해 회사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을 입혔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이날 오후 김현대 사장은 입장문에서 “한겨레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고 먼저 무릎 꿇고 반성해야 한다”며 2월 초로 예정된 대표이사 선거에서 차기 대표이사 후보가 확정되면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사측, 신문 1면·온라인에 사과문… “참담한 마음으로 바닥부터 점검할 것”

첫 보도 당일인 6일 A씨를 업무에서 배제하고,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린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던 한겨레는 9일 홈페이지와 10일자 1면에 사장과 편집국장 사퇴와 함께 A씨에 대한 해고 결정, A씨의 서면 소명 내용 등을 알린 사과문<사진>을 추가로 게재했다. 한겨레는 이날 사과문에서 “내부 자정 시스템이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철저하게 조사하겠다”, “한겨레가 어디서 무뎌졌는지, 무너지고 있는 건지, 참담한 마음으로 바닥부터 점검하겠다”고 했다.


사과문에 따르면 9일 오후 열린 인사위원회에서 한겨레는 취업규칙상의 청렴공정 의무와 품위유지 위반, 한겨레 윤리강령 위반, 취재보도준칙의 이해충돌 회피 조항 위반, 회사의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A씨 해고를 의결했다.


“청약을 고민하던 차에 김씨로부터 2019년 5월 3억원을 비롯해 총 9억원을 모두 수표로 빌렸다”는 A씨의 1차 서면 소명 내용도 전했는데, 6일 한겨레가 A씨로부터 구두 소명을 받은 뒤 첫 사과문을 통해 밝혔던 금액 6억원과도 차이가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한겨레는 사과문에서 “인사위원회는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와 별도로 지금까지 본인이 밝힌 내용만으로도 가장 무거운 징계 사유에 해당된다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해 3월 A씨에게 금전거래 사실을 들은 또 다른 편집국 간부가 보직 사퇴하고, 진상조사위 조사에 응하기로 했다는 사실도 전했다.


한겨레는 진상조사위의 사내외 확대 개편도 알렸다. 백기철 편집인을 진상조사위원장에서 면하고, 직전 한겨레 시민편집인을 지낸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를 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진상조사위에선 A씨의 금전 의혹뿐 아니라 보직 간부로 ‘대장동’ 기사에 미친 영향 유무 등의 문제들도 검토하고, 조사 결과를 빠른 시일 안에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사진=한겨레 홈페이지 캡처.

진상조사위 사내외 확대개편… 노조 “이사회 비대위 구성하라” 비판성명

한편 한겨레 노조는 조기 퇴진 의사를 밝힌 사장의 입장에 대해 ‘사장, 편집인의 즉각 사퇴’와 ‘이사회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요구하는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전국언론노조 한겨레지부는 9일 성명에서 창간과 함께 ‘촌지 거부 운동’ 등 언론계 자정을 이끈 한겨레의 자취를 먼저 언급했다. 한겨레지부는 “우리는 가난했지만, 그 가난은 기꺼웠고, 부끄럽지 않았다. 그 어떤 어려움에도 우리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적 신뢰라는 이름의 내적 자부심이었다”면서 “이제 그 존립 근거가 무너졌음을 우리는 연일 가슴 저리게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비대위를 통해 우리의 리더십을 다시 세워야하는 절명의 순간”이라며 “상법상 이사회 의결을 거치면 정기 주주총회 연기도 가능하다고 한다. 비대위가 들어서면 선관위와 협의해 차기 대표이사 선거 일정 등을 조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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