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짧은 미식가.’ 신문사에 입사하고 처음으로 생긴 별명이다. 겨우 수습을 뗀 후배에게 숨겨진 맛집을 알려주겠다며 초밥집에 데려간 선배는 내 젓가락질이 몇 번 가지 않아 멈추는 것을 보고 잊지 못할 별명을 지어줬다.
애석하게도 미식가는 아니지만 입이 짧은 것은 맞다. 먹는 과정에 수고 들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탓에 갑각류도 잘 먹지 않는다. 한 마디로 식사에 큰 흥미가 없다는 뜻이다. 백반은 다 비슷하고 제육볶음이라면 으레 같은 맛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편협한 생각은 수원 행궁동 ‘할머니네집’을 방문하면서 깨졌다. ‘행리단길’, ‘우영우 김밥집’으로 유명한 그 길목이 아닌, 북수동 성당 근처의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가정집 같은 식당 하나를 찾을 수 있다.
‘할머니네집’이라는 푸근한 이름과 달리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장식들이 눈길을 끈다. 사실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대표 메뉴인 ‘할머니 정식’이 나온 순간 일행들은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바구니 한가득 차려진 식단에 눈이 번쩍 뜨였다.
제육볶음을 비롯해 샐러드, 초밥, 감자고로케, 미역국, 계란찜 등이 상을 꽉 채운다. ‘남기면 어쩌나’하는 생각과 함께 본격적으로 식사에 돌입한다. 애피타이저처럼 나오는 작은 계란찜은 몇 숟가락 먹지도 않은 것 같은데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입에 먹기 알맞은 온도와 달달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미역국은 ‘더 주세요’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 다음으로 수저가 향한 곳은 초밥이었다. 계란초밥을 입에 넣으니 다음에 올 땐 반드시 초밥정식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갓 튀긴 것 같은 감자고로케와 뜨거운 새우 그라탕은 부드러우면서도 적당히 짭짤하다. 호불호 갈리지 않고 누구나 좋아할 것 같은 맛이다.
대망의 제육볶음을 집어들었다. 삼겹살을 먹을 때도 비계를 다 떼고 먹을 정도로 물컹한 식감을 좋아하지 않는데, 할머니네집 제육에선 그런 부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매콤한 양념에 담백한 고기, 신선한 야채가 버무려져 밥 한 공기를 순식간에 먹었다. 남기기는커녕 부족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요즘 ‘핫’한 그곳 행궁동을 방문한다면 ‘할머니네집’에서 든든한 한 끼를 드셔보시길 추천한다.
※‘기슐랭 가이드’ 참여하기
▲대상: 한국기자협회 소속 현직 기자.
▲내용: 본인이 추천하는 맛집에 대한 내용을 200자 원고지 5매 분량으로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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