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언덕길을 따라 빽빽하게 들어찬 빌라와 머리 위로 어지럽게 널린 전선, 슬레이트와 기와지붕의 낡은 주택들…. 서울역과 약현성당 사이 만리재로를 따라 걷다 보면 70~80년대 서울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속 빈 콘크리트 블록을 올린 담벼락에선 흑백사진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만리재로35길의 ‘왕대구뽈찜’도 이곳의 오래된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이다. 기와지붕 아래 노란 간판을 내걸고, 친절한 사장님 부부가 17년째 한 곳에서 영업 중이다. 처음엔 거실 자리에 좌식 테이블만 놓고 영업하다가 지금은 입식 테이블 구역을 따로 만들었다.
대표 메뉴는 대구 머리에 양념을 더해 콩나물 등 야채와 함께 쪄낸 대구뽈찜이다. 매콤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감칠맛으로 주변 직장인으로부터 인기가 높다. ‘뽈’은 아가미 부위의 살을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요리 겉모양이 흔히 먹는 아귀찜과 비슷한데, 어두육미(魚頭肉尾)란 말처럼 대구 머리에 붙은 살의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묵직한 양념 국물 맛을 한번 본 손님은 20대부터 80대 어르신까지 잊지 않고 다시 찾는다고 한다. 신선한 야채와 어우러진 대구 볼살의 풍부한 식감 때문이다. 조영순 사장은 “매일 아침 부지런히 시장에서 장 봐오는 야채로 맛을 낸다”며 “한번 오신 손님이 다른 손님과 또 찾을 수 있도록 신선한 식자재 마련에 가장 많이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수북한 야채 밑에서 건져 올린 도톰한 생선 살의 담백함은 함께 나오는 와사비 간장과도 잘 어울린다. 취향에 따라 해물과 곤이 사리를 추가할 수 있다. 퇴근길 부추전에 막걸리까지 곁들인다면 더할 나위 없는 성찬이다. 남은 양념을 김 가루와 섞어 만드는 볶음밥은 또 다른 별미다. 더운 날씨에 떨어졌던 입맛도 되살려 놓는다.
주변이 번잡하지 않아 삼삼오오 편안한 저녁 모임을 갖기에도 딱 맞다. 반세기 전 서울의 정취를 간직한 ‘만리재로 가정집 분위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양념이다.
※‘기슐랭 가이드’ 참여하기
▲대상: 한국기자협회 소속 현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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