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뀔 때마다 KBS 사장 수난사

김의철 사장 내주 해임될 듯… 관행 된 '공영방송 사장 자르기'

김의철 KBS 사장 해임이 눈앞에 닥쳤다. KBS 이사회는 김 사장 해임제청안을 상정하고 의결을 앞둔 상태다. 정부가 지난 3월 KBS수신료·전기요금 분리징수를 추진하면서 본격화한 김 사장 해임설이 결국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정권교체와 맞물린 KBS 사장 해임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이명박 정부를 시작으로 문재인 정부, 윤석열 정부까지 공영방송 사장 자르기는 마치 관행처럼 반복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열린 KBS 임시이사회에서 김 사장 해임제청안이 여권이사 6인 찬성, 야권이사 4인 반대, 기권 1인으로 가결됐다. KBS 이사회는 6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해임제청안에 대한 찬반토론을 벌이기로 했다. 뒤이어 12일 임시이사회를 다시 개최해 김 사장의 청문절차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해임제청안은 이날 또는 다음 이사회에서 가결될 것으로 보인다. 이사회가 의결한 해임제청안을 윤석열 대통령이 재가하면 김 사장의 해임은 확정된다.

김의철 KBS 사장<사진>의 해임제청안을 상정한 KBS 이사회가 6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해임제청안에 대한 찬반토론을 벌인다. 이사회는 12일 김 사장의 청문을 진행한 뒤 이날 또는 다음 이사회에서 해임제청안을 의결할 것으로 보인다. 김 사장은 "해임제청은 KBS의 정치적 독립 훼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뉴시스


앞서 서기석 이사장을 제외한 KBS 여권이사 5인은 지난달 28일 김 사장의 해임제청안을 이사회 긴급 안건으로 제출했다. 이들이 내세운 해임 사유는 △대규모 적자로 인한 KBS 경영악화 △직원 퇴진 요구로 인한 리더십 상실 △불공정 편파방송으로 국민의 신뢰가 추락해 수신료 분리징수 초래 △교섭노조와 맺은 고용안전협약의 경영권 훼손 우려 등이다.


김 사장은 이사회의 해임제청이 “KBS의 정치적 독립을 전면 훼손하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김 사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해임제청안 상정에 대한 이사회 표결을 앞두고 “여당 추천 이사들이 든 사장 해임 사유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거나 주관적 판단에 따른 주장에 불과하다”며 “이사회가 여권 위주로 구성을 바꾸자마자 가장 먼저 사장 해임에 나선 것에 큰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김 사장 해임은 KBS 야권이사들이 잘리기 시작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대통령에게 KBS 이사 해임을 요청할 수 있는 방송통신위원회부터 움직였다. 한상혁 전 위원장 면직 등으로 상임위원 정원 5인 가운데 3인밖에 남지 않았던 방통위는 정부·여당 추천 위원 2인의 의결만으로 KBS 야권성향 이사 2명의 해임제청안을 의결했다. 법인카드 부정 사용 논란으로 국민권익위원회 조사를 받고 있던 남영진 전 이사장과 ‘종편 재승인 점수 고의감점 의혹’으로 기소된 윤석년 전 이사가 지난 7~8월 강제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전임 문재인 정부에선 여권이었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야권으로 바뀐 두 이사가 해임되면서 사장 해임도 급물살을 탔다. 이들의 빈자리는 방통위가 임명한 여권이사들로 채워졌고, KBS 이사회 여야 구도는 기존 4대7에서 6대5로 역전됐다. 이사회는 여권 우위로 재편되자마자 사장 해임제청에 착수해 사실상 의결만 남겨뒀다.


김 사장이 해임에 이르게 될 과정은 2008년과 2018년의 데자뷔다. KBS 이사 해임부터 이사회 여야 구도 6대5 역전, 사장 해임 사유까지 큰 차이가 없었다. 지난 2006년 11월 노무현 정부에서 연임에 성공한 정연주 KBS 사장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그해 8월11일 해임됐다. △부실경영 △인사제도 혁신 실패 △편파보도 등 공정성 훼손 △관리 부재와 기강 해이 등이 해임 이유였다. KBS 이사회는 감사원이 부실경영 등을 이유로 정 사장의 해임을 요구한 지 단 3일 만에 해임제청안을 의결했다. 이 역시 여야 구도가 6대5로 뒤바뀐 직후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 6개월 만에 KBS 이사회에선 야권이사 3명이 여권으로 물갈이됐다. 당시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김금수 KBS 이사장을 압박해 자진 사퇴시켰고, 이어 조상기 이사도 스스로 물러났다. 동의대 교수이던 신태섭 이사는 대학에 KBS 이사 겸임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통위 의결과 대통령 재가를 거쳐 해임됐다. 세 이사 해임은 사장 해임을 위한 발판이었다.


10년 뒤 정권이 바뀌자 KBS 사장은 또 임기를 남기고 교체됐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듬해인 2018년 1월23일 고대영 KBS 사장도 여야 6대5 이사회 하에서 해임됐다. 해임 사유는 △지상파(KBS2) 재허가 심사 점수 KBS 사상 처음으로 합격점 미달 △KBS 신뢰도와 영향력 추락 △파업사태 초래해 직무능력 상실 △졸속으로 추진한 조직개편으로 내부 갈등 초래 △징계 남발과 인사 관리 실패 등 8가지였다. 당시 공영방송 정상화와 고 사장 사퇴를 촉구하며 넉 달째 총파업을 벌였던 KBS 구성원들은 고 사장이 해임되자 업무에 복귀했다.


장기 총파업이라는 초유의 사태에서 진행된 사장 해임이지만 그 절차는 2008년과 다르지 않았다. 여야 4대7 이사회에서 야권성향 김경민 이사가 파업 중에 자진 사퇴해 구도가 기울기 시작했다. 이후 감사원이 KBS 이사들의 업무추진비 사적 사용을 적발했고, 방통위가 이를 근거로 야권 강규형 이사의 해임제청안을 의결했다. 또다시 KBS 이사회가 여야 6대5로 역전돼 사장을 해임한 과정이다.


2008년과 2018년의 KBS 이사회, 방통위, 대통령은 당시 KBS 사장 해임에 정당성을 부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훗날 법원의 판단은 모두 “위법하다”였다. 정연주 전 사장이 해임된 후 4년이 지난 2012년 2월 대법원은 그의 해임이 무효라고 선고했다. KBS 재정 악화 등에 정 전 사장의 책임이 있지만 해임에 이를 정도로 잘못이 크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고대영 전 사장도 지난 6월 대법원에서 5년 전 해임처분이 위법했다는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해임 사유뿐 아니라 해임제청 과정 또한 부당하다고 봤다. 그에 앞서 신태섭 전 이사와 강규형 전 이사도 해임무효 소송에서 승소했다.


이 같은 판례에 비춰 김 사장의 해임 역시 위법하다는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정부가 같은 방식과 비슷한 사유로 KBS 사장 해임을 밀어붙이는 형국이다. 전국언론노조는 지난달 31일 성명에서 “퇴행적 언론 장악의 역사를 이제는 종결지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국회가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제도화해 구조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정치권의 방송 침탈을 끊어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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