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호 선배요? 서울경제에 AI 나무를 심은 사람이죠.” 3년 가까이 미래전략부에서 한솥밥을 먹는 강도원 기자의 말이다. 인공지능(AI) 불모지였던 서울경제신문에 우 기자가 심은 어린나무는 6월2일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열린 세계신문협회 디지털미디어어워즈(DMA)에서 잎을 틔웠다. 서울경제가 구축한 ‘AI 링크(AI LINK)’는 DMA ‘최우수 AI 기반 뉴스 제품, 포맷, 전략(Best AI-Driven News Product, Format, or Strategy)’ 부문에서 수상했다. 국내 언론사의 DMA 본선 진출과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달 초 서울 종로 서울경제 사옥에서 만난 우승호 기자는 “시상식에서 수상작으로 ‘Republic of Korea(리퍼블릭 오브 코리아)’가 호명될 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감격이나 기쁨이 아니라 다행이라니? 거기엔 비하인드가 있었다. DMA 본선에 올랐지만, 우 기자는 6·3 지방선거 일정도 있고 너무 멀어서 참가를 망설였다. 주최 측에 메일을 보냈더니 “누가 받는지 말해줄 수 없지만 한 팀은 꼭 와라”라는 답장이 왔다. 출장비로 적잖은 돈을 써야 하는데 상을 못 받으면 어쩌지? 현장 리허설에 가보니 다른 나라 경쟁자들도 다 자기가 상을 받는 줄 알고 들떠 있었다.
시상식은 본선에 오른 다섯 작품을 하나하나 부르는 방식이었다. 박수 소리가 들릴 때마다 우 기자의 머릿속엔 ‘이게 될까, 안 될까’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마침내 수상작으로 호명되자 그는 ‘휴!’하고 짧은 한숨을 내쉬고 무대로 뛰어 올랐다. “회삿돈 쓰고 빈손으로 돌아가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너무 다행이었어요.(웃음)” 우 기자는 그 자리에서 트로피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하나 받았다”고 보냈다. 한국 시간 새벽 2시7분, 깨어 있던 아내는 “와우!”라고 답했다. 우 기자는 숙소에 돌아와 기사를 쓰고 한국 시간으로 아침 7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회사 사람들과 손동영 대표에게 수상 소식을 공유했다.
DMA에서 ‘베스트 AI 뉴스 제품’에 선정된 AI 링크는 AI로 △기자들의 기사 작성을 돕고 △독자 맞춤형으로 뉴스를 큐레이션하며 △텍스트 기사를 영상화하고 △한글 기사를 문맥까지 영어로 번역하는 시스템이다.
석 달 만에 첫 AI 숏폼 영상 제작
2024년 1월 챗GPT와 동거를 시작한 우 기자는 설명서를 보며 레고 블록을 조립하듯 AI 콘텐츠 제작에 나섰다. 처음엔 “기사 요약해 줘” 같은 단순한 프롬프트로 시작했다. 경제 용어 설명을 뽑아 달라고 하고, 뽑아주면 쇼츠를 만드는 프롬프트를 짜고, 그걸 엑셀로 옮기고, 자동화하면서 하나씩 나아갔다. “하나를 알면 하나를 하고, 열을 알면 열을, 백을 알면 백을 하는 식이었습니다. 중요한 건 직접 해보는 거였어요. 그렇게 한 계단씩 올라왔습니다.”
그해 4월22일, 그는 AI가 만든 숏폼 영상을 처음으로 올렸다. 서울경제에 실린 1면 기사를 요약하는 쇼츠였다. 두 달 가까이 준비해 내보낸 첫 AI 영상이었다. 텍스트 위주의 영상이었지만, AI를 활용한 콘텐츠 기획의 계기가 됐다. 그는 “그냥 호기심에 던져본 게 아니라 될 만한 형태를 찾을 때까지 손으로 만들어 본 끝에 나온 첫 결과물이었다”고 했다. “돌아보면 저는 다섯 번째 파도를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넷이 오던 2000년, 모바일이 오던 2010년, 블록체인이 오던 2016~2017년, AI가 오던 2024년. 25년차 기자의 눈에 그 파도가 보였습니다.”
챗GPT가 막 세상을 흔들고 있던 2023년 9월, 우 기자는 서울경제에 돌아왔다. 2018년 12월 퇴사하고, 4년8개월만이었다. 2017년 전략기획실 사업부장을 맡아 블록체인 전문매체 ‘디센터’를 론칭하고 아시아 블록체인 페스티벌(ABF) 행사를 치르는 등 혹사한 탓에 몸에 이상이 생겼다. 출장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쓰러지기도 했다. 하려던 사업의 여건도 녹록지 않았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회사를 그만뒀다.
아내 반대 무릅쓰고 4년8개월만에 복귀
서울경제를 나온 그는 올투원이라는 회사를 경영했다. 아내가 개원한 재활의학과 개인 병원의 마케팅을 도왔는데 나중엔 병·의원 컨설팅 서비스로 나아갔다. 핵심은 콘텐츠였다. 병원과 치료를 소개하는 글을 쓰고 동영상과 카드뉴스, 음악을 만들어 네이버플레이스, 구글, 당근마켓, 유튜브 등에 올렸다. 기사를 쓰던 그가 고객과 시장을 상대하며 적응하고 있을 때 대표이사에 취임한 손동영 대표가 복귀를 제안했다. “그 지옥에서 어렵게 꺼내놨더니 다시 그 구덩이에 들어가려 하느냐”며 말리는 아내를 두 달 가까이 설득했다. 돌아온 이유는 사람이었다. “2018년에 못 끝낸 일을 다시 할 수 있겠다 싶었고, 서울경제에서 받은 게 많았다고 늘 생각해서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었어요.”
서울경제에 재입사한 그는 부서 이름을 미래전략부로 짓고 대학생 인턴 1명을 뽑아 일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서울경제가 무엇을 가졌고, 어떤 상황이며, 무엇을 할 것인지 들여다보았다. M&A부터 버티컬 미디어, 콘텐츠 등 여러 신사업에 관심을 두다가 ‘AI 콘텐츠 프로바이더’로 방향을 틀었다.
우 기자의 구상은 ‘기사 재가공’이었다. 기사가 꼭 텍스트로만 남아 있어야 할까? AI를 활용해 기사를 더 다양한 방식으로, 더 많은 독자에게 전달할 수 없을까? 이런 질문은 기자들이 취재한 기사를 원천으로 여러 쓰임을 만드는 AI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신문사는 편집국이 거의 전부라 할 만큼 막중하고, 매일 2억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신문을 만들잖아요. 그렇다면 기자들이 만든 기사를 어떻게 재활용할 것이냐, 거기에 AI를 쓸 수 있겠다. 거기에서 출발했습니다.”
처음엔 기사 하나를 쇼츠로 만들었고, 다음엔 여러 기사를 묶어 롱폼 영상으로, 다음엔 영어 영상으로, 나중에 음악까지 만들었다. 제작 역량이 축적되자 두 갈래 길이 보였다. 하나는 뉴스룸 안에서 기자의 일을 돕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독자를 위한 콘텐츠 생산이었다. 기자를 돕는 쪽은 기자 공부 모임에서 출발했다. 2023년 9월 복귀하자마자 그는 코로나19로 뜸해진 선후배가 다시 모이도록 자발적인 공부 모임을 만들었다. 뉴욕 특파원을 지낸 김영필 금융부장이 미국 증시 보는 법을 강의하고, 외부에서 CEO 지낸 분을 모셔 재무제표 보는 법을 공부했다. 이후 이 모임은 AI TF로 전환되어 올해 1월까지 15차례 활동했다. AI TF는 AI 활용법을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는 중요한 창구가 됐다.
AI TF로 바뀐 공부 모임, 피드백 창구
“제일 먼저 제목 추천 서비스를 만들어 TF 단톡방에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았어요. 그다음 보도자료를 넣으면 기사 초안을 써주는 것, 단어나 간단한 내용만 넣어도 발제로 만들어주는 것, 기사를 다듬어주는 퇴고 기능 등을 하나씩 붙였습니다.” 그렇게 기자 보조 AI 도구는 300개가 넘는 프롬프트를 거쳐 담금질에 들어갔고, 독자에게 맞춤 큐레이션하고, 기사를 영상으로 바꾸고, 한글 기사를 영어로 옮기는 서비스도 하나하나 쌓아갔다.
서울경제는 올해 3월 CMS(콘텐츠 관리 시스템)를 새로 만들면서 AI 도구를 바로가기로 붙였다. CMS 화면 오른쪽에 있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즉시 교열이나 제목 추천을 받을 수 있도록 자동화했다. 기자들 반응은 어떨까. “사실 별말이 없습니다. 중간중간 ‘잘 쓰고 있다’, ‘잘 쓰는데 이런 오류가 난다’, ‘이런 걸 해줬으면 좋겠다’는 메일이 옵니다. 기자는 원래 피드백이 약하죠. 좋으면 말이 없고 문제가 생겨야 얘기하죠. 그러니 문제가 생겼다고 말해주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쓰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기자들은 AI 보조 도구를 일주일에 4000건, 한 달에 1만6000건에서 2만건쯤 사용하고 있다. 다른 AI 엔진도 숫자가 따라오고 있다. 서울경제는 텍스트 기사를 영상으로 바꾸는 AI 서비스를 통해 지난해 네이버TV 등에서 1억원을 벌었다. 지난해 말부터 서울경제는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모든 기사를 AI 영문화 엔진을 통해 영어 사이트에 올리고 있다. 하루 400건, 한 달에 1만건이 넘는 기사를 실시간 영어로 자동 번역한다. AI가 번역한 영문 기사가 구글 검색에 노출된 횟수는 올해 1월 338만건에서 5월 1359만건으로 4배 늘었다. 요즘은 해외 명품 브랜드에서 광고 문의가 들어오고, 실제로 몇 개 붙었다고 한다.
“막히면 솔루션 찾고 한 계단씩 올라와”
서울경제가 생산하는 AI 기반 뉴스 콘텐츠는 하루에 얼마나 될까. 독자 맞춤형 뉴스레터 8건, AI가 영어로 옮긴 기사 400건, 팟캐스트 12건, 영상이 40~50건쯤 된다. “핵심은 숫자가 아닙니다. 같은 기사가 독자마다 다른 얼굴로 가닿는다는 점이죠. 취준생에겐 취준생의 언어로, 주식 투자자에겐 종목 호재와 악재의 관점으로, 해외 독자에겐 영어로요.” 서울경제는 AI 서비스의 환각(할루시네이션)을 예방하기 위해 세 겹의 안전장치를 뒀다. AI가 보는 자료를 편집 데스크의 검토를 거친 서울경제 기사로 한정하고, 외부 인터넷망과 차단하고, 발행 버튼은 반드시 기자가 누르게 했다.
우 기자는 직접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하면서 1년 만에 AI 뉴스 서비스 4개를 구축했다. 구축 과정에 여러 어려움이 잇따랐다. 가장 크게 막힌 건 ‘여럿이 동시에 쓰는 일’이었다. 기자 수백 명이 동시에 접속해 쓰려면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활용해 웹서비스를 새로 구축해야 했다. 기존 클라우드 웹에 프롬프트를 얹어 쓰던 것과 차원이 달랐고, 거기서 한참을 헤맸다. 길이 열린 건 지난해 7월이었다. 아마존웹서비스(AWS)와 교류하면서 AI 플랫폼 ‘아마존 베드락(Amazon Bedrock)’을 만났다.
AWS 관계자와 첫 미팅 전날 그는 밤부터 새벽까지 베드락을 붙들었다. 베드락에 엔트로픽의 AI 모델 클로드를 붙여 캡처를 하나씩 따라가며 최초의 챗봇을 만들었다. 작업은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이어졌다. 그런 일이 서너 번 있고 나서야 다른 기자들이 쉽게 쓰는 서비스로 풀렸다. “돌아보면 단계마다 새 허들이 생기고, 막히면 솔루션을 찾고, 그렇게 한 계단씩 올라온 셈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15층짜리 건물 하나를 그렇게 지었습니다.”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고 싶던 사람
우 기자는 1997년 12월 서울경제에 입사했다.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고 싶었던 그는 드라마 PD를 생각했다. 그런데 PD를 하던 선배가 “네가 하고 싶은 건 PD가 아니라 기자다. 그것도 경제지 기자”라고 했다. 선배의 조언이 먹혔던지 그는 IMF 외환위기 직전, 서울경제에 수습기자로 들어왔다. 2년만 해보고 세상을 좀 안 다음에 다음을 정하자고 맘먹었는데 어느덧 여기까지 왔다. 그 사이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6번 받았고, 한국과학기자협회 과학기자상, 씨티 대한민국 언론인상 등도 안았다.
AI 서비스 구축이 한창이던 2024년엔 서울대 AI 최고경영자 과정에 등록했다. 사비로 1000만원을 넘게 썼지만, 돈으로 시간을 산다고 생각했다. AI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었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많은 걸 배웠다. 어찌 보면 그에겐 공부라는 그림자가 늘 따라다녔다. 학원에서 회계를 배우고, 컴퓨터를 모른다 싶어 PC 정비사 자격을 따고 경영 MBA, 자산운용, 지식재산 특허로 번져갔다. 철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원에서 공학 석사, 공학대학원에서 기술정책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새로운 영역을 만나면 일단 그 언어부터 배워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우 기자의 시선은 서울경제에 심은 AI 나무 그늘 밖을 향해 있다. 그가 예측하는 5년 뒤 뉴스룸은 사람이 로봇 팔다리를 달고 100kg, 200kg을 거뜬히 들고 뛰는 것처럼 AI를 장착한 기자가 취재, 기사 작성과 송고, 다양한 콘텐츠 제작에서 지금의 10배, 20배를 해내는 모습이다. “요즘 제 관심은 아직 오지 않은 손님을 맞이하는 일에 더 가깝습니다. 다음에 무엇을 심을지 미리 못 박기보다는 우리가 아직 모르는 영역,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저널리즘이 들어설 마당을 넓히려고 합니다. 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그 나무들이 설 마당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