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손실 보전할 저출생 대책, 언제쯤 나올까

[이슈 인사이드 | 젠더] 정지혜 세계일보 사회부 기자

정지혜 세계일보 사회부 기자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자녀를 낳는 것은 개인에게 어떤 의미일까. 기쁨보다는 부담이 확실히 더 커보인다. 이미 삶이 팍팍한 이들은 ‘나 살기도 바빠서’ 아이 낳을 엄두를 못 내고, 그럭저럭 성공의 궤도에 오른 이들은 ‘고지가 눈앞인데 여기서 멈출 수 없어서’ 출산을 미루거나 기피한다. 돈이 없으면 없어서, 있으면 그걸 지켜야 해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정한다.


지금의 초저출생 현상은 웬만해선 출산하지 않는 편이 삶의 질로 보나 생존율로 보나 이롭기에 나타난 진화론적 결과다. 출산의 주체인 여성 입장에서 특히 그렇다. 가정을 갖고 아이를 낳는 것은 남성에게보다 여성에게 손실이 훨씬 더 큰 행위라는 것. 이를 인정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단추다.


출산을 통해 더욱 벌어지는 성별 격차,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정책의 초점이 돼야 한다. ‘아이 있는 집’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더 구체적으로 ‘여성’의 손실을 실질적으로 보전하는 안이 필요하고, 가부장 특권을 내려놓은 남성과 만들어내는 ‘평등한 가족’ 모델을 정착시키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것만 빼고 다 하는 실정이다. 핵심은 비껴간 채 돈만 쏟아부으니 효과가 있을 리 없다.


지난 18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나란히 선보인 총선 저출생 공약도 그 범주를 못 벗어났다. 특히 민주당에서 현금성 지원에 초점을 맞춘 공약을 발표한 것은 실망스럽다. 아이 키우는 가정에 대한 금전·주거 지원 등은 실질적 성평등이 이뤄진 다음에나 따라올 보조 수단이지 출생률을 끌어올릴 핵심 역할을 하기는 힘들다.


임신·출산·육아에서 여성이 일방적으로 지는 부담의 크기의 수평을 맞추려면 그동안 뒤로 빠져 있던 남성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 보조금을 얹어주는 것으론 주 양육자가 여성인 성차별적 현실을 건들 수 없기 때문이다.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공동육아, 가사노동의 외주화가 약간의 도움은 되겠지만 이를 통해 출산율 반등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국민의힘에서 내놓은 남성 출산휴가 한달 의무화, 자녀돌봄휴가 신설, 육아휴직 급여 상한 인상 등은 그런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인구부를 신설하겠다는 공약으로 약간의 기대나마 무너뜨렸다. 기껏 남성의 육아 참여를 높이는 안을 내놓고도 끝내 출산의 주체인 여성을 지우는 행태는 성평등 시계를 뒤로 가게 함으로써 정책 효과를 반감시킬 뿐이다.


지금 아이 낳기를 꺼리는 여성들이 원하는 건 독박육아에서 벗어나는 것 그 자체가 아니다. 출산을 하지 않는 배우자 남성의 삶이 크게 흔들릴 일이 없는 만큼 내 삶도 똑같이 그렇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아가 구성원 모두가 평등한 새로운 가족 모델을 통해 ‘지속가능한 가정’을 꾸리기를 희망한다. 그게 힘들다면 굳이 그 길을 가지 않겠다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런 여성들에게 ‘돈 줄 테니 아이 낳으라’고 하는 수준이라니 아직도 갈 길이 참 멀다. 파격적인 경제적 지원으로 출생률을 높였다는 헝가리 모델은 이제 좀 그만 언급하자. 정부 내각 중 여성장관 비율 9.1%, 국회 내 여성 국회의원 비율 12.6%에 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최하위 성평등 수준을 기록하는 국가의 정책을 따라간다는 건 결국 가부장제와 전통적 성역할에 기댔던 옛 모델로 돌아가 그때 수준의 출생률을 만들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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