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뉴스' 갈망하던 기자들, 소수자 위한 스피커 되다

[인터뷰] 사회 소수자 이야기 담는 SBS '더 스피커' 기자들

각자 다른 부서에 있는, 다양한 연차의 기자 여러 명이 합심해 사회적 약자라는 소재로만 7개월 가까이 한 코너를 연재하는 사례가 얼마나 될까. 국회, 정부부처, 사건사고 현장 등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현안 취재를 하다가도 지나치기 쉬운 소수자들을 포착해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기자들이 있다. SBS 구독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서 ‘더 스피커’를 연재하고 있는 김민정·김형래·김혜영·원종진·이현정·정반석·제희원·조윤하 기자다.

SBS 구독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에서 ‘더 스피커’를 연재하고 있는 김혜영(사진 왼쪽부터)·김민정·김형래·제희원 기자를 지난 19일 서울 양천구 SBS 사옥에서 만났다. 이들과 함께 더 스피커를 쓰고 있는 원종진·이현정·정반석·조윤하 기자는 취재 일정 등으로 인터뷰에 참여하지 못했다.


지난해 8월부터 매주 한 번 연재되는 더 스피커는 여성·노동·인권·소외계층 등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롱폼 텍스트 기반 콘텐츠다. ‘비주류란 이유로, 마이크를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의 스피커가 되는 저널리즘’이라는 소개대로, 더 스피커는 2분이라는 TV 리포트 형식의 한계에서 벗어나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로 온전히 마이크를 채운다.


서로 다른 출입처에 있던 기자들이 하나의 코너를 만들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건 지난해 7월 이현정 기자의 제안이 계기가 됐다. 기자라면 누구나 출입처에서 발생한 사안만을 따라가다 보면 다루고 싶은 주제가 생겨도 취재하지 못하거나, 단편적으로만 소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 정치인, 교수, 남성 등 기득권 위주로 반영되는 뉴스 지형 속에선 특히나 젠더 문제 등 소수자 이야기는 충분히 담기지 못한다. 이런 아쉬움을 갖고 있던 이현정 기자는 기자 개인이 주목하고 있는 이슈를 제대로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봤다.


“그동안 비슷한 고민을 같이 했던 동료들이 있었어요. 당시엔 제가 내근을 하고 있어서 회사에서 마주치는 선후배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금방 인원이 늘어나더라고요. 거절하는 분이 없고 다들 덥석덥석하겠다고 해서 오히려 놀랐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이 일로 기존 업무를 줄여주지는 않거든요. 그동안 저희끼리 회식 한 번 못할 정도로 바쁜 와중에도 펑크 한 번 안 나고 이어가고 있다는 게 무엇보다 놀라운 일이에요.”(이현정 기자)


“뉴스가 더 좋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모인 기자들이다. 그래서 기자들은 더 스피커 연재를 하며 기존 업무를 하며 갖고 있던 어떤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주말이나 퇴근 시간 이후 연재 마감을 하는 고생에도 이탈자 없이 지금까지 이 코너가 유지된 이유이기도 하다. “방송 뉴스 분량이 문장으로 치면 10문장 정도이고, 균형을 맞춰야 하는 미명 아래 소수자 문제에 있어서도 싱크가 비슷하게 나가 그 이면을 알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지금은 국토교통부에 출입하고 있는데 최근 더 스피커를 통해 쪽방 주민 빈곤 문제를 다뤘어요. 방송 뉴스는 서울의 집값 위주로 흘러가기 때문에 이 주제는 발제가 안 될 것 같기도 했고, 짧게 소화하기엔 폭력적인 방식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죠. 어떤 부채 의식이 항상 있었어요. 정말 절박한 사람들인데 제3자 입장으로만 바라보잖아요. 연재하면서 조금이라도 부채감을 덜어내고 있습니다.”(제희원 기자)


정치나 경제 등 일반 대중의 삶과 밀접한 이슈에 비해 소수자 이야기는 주목도가 낮을 거라고 대부분 생각한다. 애초 연재를 시작할 땐 기자들도 “조회수를 포기”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고령자 노동’을 다룬 콘텐츠 등이 포털, 자사 플랫폼인 스프에서 수치상으로도 긍정적인 반응이 확인됐다. 더 스피커 연재물은 수많은 스프 콘텐츠 중에서도 조회수가 “잘 나오는 편”이기도 하다. 김혜영 기자는 “이러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분들은 분명히 있고, 그 수요층이 꾸준히 저희 코너를 봐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반응들이 우리가 연재를 이어갈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면서도 “저희는 좋은 질문을 계속 던져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우리가 답을 찾아가는 그 지향점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가장 최근 더 스피커에 합류해 ‘연평도 주민의 트라우마’를 다룬 김형래 기자도 안팎의 좋은 반응을 느낀다. “메인뉴스에서 궁금해하는 건 북한 해안포가 열렸는지, 군사 대비 태세가 어떤지 등이잖아요. 처음에 연평도 주민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려 할 때 ‘어차피 우리가 얘기해봤자 뉴스에 안 나가지 않냐’고 하시더라고요. 기사가 나가고, 연평도 주민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가 됐다는 반응을 들었을 땐 그래도 목적에 부합했구나 싶었죠. 앞으로도 더 할 수 있겠다는 힘이 생겼고요.”


기자들의 “궁극의 목표”는 더 스피커가 주목한 이슈들이 메인뉴스인 ‘8뉴스’에도 더 많이 다뤄졌으면 하는 것, 그리고 이 시도를 함께할 더 많은 동료다. “친한 사람들끼리 모인, 폐쇄적인 모임이 절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목소리는 많을수록 좋거든요. 구성원이 더 다양해야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시야가 생길 수 있고,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봅니다. 많은 동료들이 참여해주면 이 코너 안에서도 시리즈물, 협업물 등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넓어지지 않을까요?”(김민정 기자)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