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광란’(March Madness),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가 주최하는 남자농구 디비전1 토너먼트를 부르는 애정 어린 표현이다. 미국 전역에서 68개 대학이 참가해 단판으로 승부를 가리는 대회로, 많은 미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미국 ‘3월의 광란’도 한국판 ‘3월의 광란’엔 미치지 못한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얘기다.
“너 죽고 나 살자.” 이번 총선을 관통하는 여야의 태도다. 핵심 주제는 딱 두 글자, ‘심판’. 더불어민주당을 축으로 야권은 ‘정권 심판론’을 내세우고 있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민주당 심판론’과 최근엔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으로 맞서고 있다. 대부분 선거가 그랬지만, 이번 총선은 여야 대결이 더욱 극에 치닫고 있고 국민과 여론도 그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심판 총선’이 우리 사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고 폭발하진 않을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 상황을 부채질하는 게, 안타깝게도 대부분 언론이다.
“결국 캐스팅보트를 쥔 부동층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민주당이 제1당이 되면…나라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그(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 조선일보 3월26일자 ‘김대중 칼럼’은, ‘혼란’과 ‘대통령의 결단’을 들이밀며 부동층, 더 나아가 국민을 겁박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24년 대한민국 보수언론의 비루한 모습이다. 조선일보는 1992년 12월 대통령 선거 때도,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를 찍으면 김대중 민주당 후보가 이긴다는 ‘류근일 칼럼’을 투표 20여 일 전에 실어 부동층의 불안 심리를 자극했다. 당시 대선에선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가 이겼다.
진보언론은 어떤가? 이재명 대표의 사천 논란에 따른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파동을 적극적으로 짚으며 비판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태풍의 눈이 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에 대해서도 비슷하다. 일부에선 오히려 옹호하는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총선을 계기로 개설한 유튜브 채널들은 더욱 그렇다. 적잖은 구독자와 조회 수, 그리고 부수입도 얻었다. 정당은 보수건 진보건 당파성을 띨 수밖에 없다. 언론사도 자신의 색깔이 있지만, 지켜야 할 선도 있다. 언론은 정당이 아니다.
일부 언론과 기자들의 분투는 그래서 소중하다. ‘눈앞의 심판’만이 아닌 기후위기와 저출생 같은 우리와 후손의 ‘또 다른 현실을 심판’하는 쟁점들이 이번 총선에서 주목받도록 애쓰고 있다. 눈 밝은 기자들이 있다는 건 그나마 위안이다. 하지만 이들은 너무 소수다. 이런 기자들과 언론사가 더 많아야 한다. 이와 함께 여야 각 정당들이 내놓은 공약들에 대한 좀 더 심층적인 검증도 벌여야 한다. 독자와 시청자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며 변명 삼지 말아야 한다. 저잣거리에서 싸움판 벌어졌다고 동네방네 떠들어대며 구경꾼 모아놓고 더 나아가 ‘내 편 네 편’ 편 갈라놓는 건 언론이 아니다.
올해 미국 대학농구 ‘3월의 광란’은 4월9일 결승전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한 달가량 국민의 관심을 듬뿍 받는 축제다. 한국에선 4월10일 전쟁 같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른다. 정치권의 사생결단이야 그렇다 해도, 언론마저 중심을 못 잡고 뒤따른다면 더 이상 언론이 아니다. 언론이라면 더 넓고 더 멀리 더 깊게 보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