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취임 2주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었다. 2022년 8월 이후 무려 20개월 만의 기자회견이었다. 지난 4월 총선 참패로 국정 기조 전환을 바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높아진 터라 어느 때보다 관심이 집중됐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기대한 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대통령’에서 ‘듣기 불편하지만 들어야 할 말을 듣는 대통령’으로 변했는지 여부였다.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의혹이나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고 외압 의혹에 대해 대통령이 어떤 대답을 할지도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 기자회견은 국민들 눈높이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 명품 가방 의혹에 대해 “제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걱정을 끼쳐드린 데 대해 사과드린다”고 했고, 4·10 총선 결과에 대해 “저와 정부부터 바꾸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국민 다수가 찬성하는 김건희 특검법은 ‘정치공세’로 치부해 버렸고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서는 “경찰과 공수처 수사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옳다”고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총선 후에도 마이웨이를 고집하겠다는 뜻으로 비쳤다. 오죽하면 보수 언론으로부터 대통령 사과가 ‘옆구리 찔러 절 받는 듯하다’는 반응까지 나왔겠는가. 특히 논점을 피해 가는 듯한 동문서답식 대답은 궁금증을 해소하기는커녕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채 상병 사망사고 외압 의혹과 관련, ‘해병대수사단의 수사결과에 대해 국방부 장관을 질책했느냐’는 질문을 하자 대통령이 “채 상병 사망 직후 왜 무리한 구조작전을 폈느냐는 질책을 했다”고 답변한 게 대표적이다. 외교 안보 분야에 대한 질문 기회를 외신 기자들에게만 준 점도 국내 언론 홀대라는 지적을 받을 만한 대목이다.
무엇보다 안팎에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정권의 언론 장악 논란에 대해 대통령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은 점은 유감이다. 2인 체제로 중요한 정책결정을 잇따라 내리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 파행, 정권에 불리한 보도만 겨냥해 징계를 남발하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편파 운영 등은 전임 정권들의 언론 길들이기 행태와 비교해도 선을 크게 넘은 사안들이다. 기자회견은 145명의 참석 기자 중 대통령실이 지명하는 기자에게 질문을 받는 형식이었다. 보수언론인 조선일보와 TV조선 기자에게는 질문 기회를 주고, 정권과 대립하고 있는 MBC 기자의 질문을 받지 않은 점이 결코 우연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정권이 비판 언론에 귀를 막으면 위기를 잠깐은 모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국민에게 피해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대통령이 자진해서 이런 문제에 유감을 표할 것이라는 기대는 할 수 없다고 해도 이날 질문한 20명의 기자 중 누구도 언론장악, 언론자유 문제와 관련한 질문을 던지지 않은 점은 의아하다. 70분간 기자회견에 의제별로 질문 숫자가 정해져 있다고 해도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어갈 사안이 아니지 않은가.
제한된 시간에 보다 많은 매체에 기회를 주기 위한 배려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기자회견은, 추가 질문이 허용되지 않는 기자회견 형식에 대해 답답함을 가중시키는 회견이었다. 윤 대통령이 소통을 늘리겠다고 다짐한 만큼, 다음번 기회가 있다면 국민들 궁금증 해소를 최우선 가치에 둔 회견방식을 고민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