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이 2일 전격 사퇴했다. 취임 6개월 만이고 더불어민주당 등 야 5당이 방통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지 닷새만이다. 지난해 12월 탄핵소추안 표결 직전 사퇴한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에 이어 방통위는 두 번 연속 탄핵소추를 앞두고 수장이 자리를 물러나는 씁쓸한 기록을 세우게 됐다. 김 위원장은 물러나면서 “야당의 탄핵 발의는 헌법재판소의 최종적인 법적 판단을 구하려는 것보다 저에 대한 직무정지를 통해 방통위의 운영을 마비시키고자 하는 정치적인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자신과 ‘2인 방통위’를 이끌어 온 이상인 부위원장과 함께 야당에 의해 직권남용 혐의로 고위공직자수사처에 고발된 상태다. 법률가 출신인 그가 해야할 일은 야당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위법적인 2인 체제로 방통위를 이끌며 중요한 결정을 내려온 행태에 대한 반성문부터 쓰는 게 온당하다.
사정이 어찌됐건 ‘방통위원장에 대한 탄핵안 발의-위원장 사퇴’라는 악순환의 반복은 여야할 것 없이 방송환경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려는 정치적 시도의 폐단을 보여준다는 데서 개탄스러운 일이다. 구글과 애플 인앱결제에 대한 과징금 부과, 네이버 알고리즘 관련 사실 조사 결과 발표, MBC를 비롯한 지상파 재허가 등 업무가 산적한 상황에서 정치적 이유로 위원장이 공석이 되고 방통위 업무에 공백이 생기는 일은 사회적 자원의 낭비일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 사퇴를 두고 김 위원장과 여당은 현행법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 야당은 방송장악을 위한 ‘꼼수 사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8월12일 임기가 끝나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 자리를 둘러싼 여야의 갈등이 있다는 점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정부 여당은 야권 성향의 방문진 이사를 교체해 현 정부에 비판적인 지금의 MBC 체제를 바꾸려 하고 있고, 야당은 현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야당이 김홍일 위원장에 대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자마자 김 위원장이 기습적으로 전체회의를 열어 KBS, MBC, EBS 이사 선임 계획을 의결한 것은 그런 점에서 예측되는 수순이었다.
근본적 문제는 여야 모두 공영방송을 마치 선거 전리품처럼 여기고, 정권을 잡을 때마다 공영방송 이사들을 ‘자기 편’으로 갈아치우려 무리수를 남발한다는 점이다. 잘잘못을 가리기 앞서 작금의 ‘방통위 잔혹사’는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성에는 관심이 없고 정권을 잡을 때마다 ‘방송 길들이기’를 시도했던 정치권이 자초한 결과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다만 이와 별개로 ‘합의제 행정기관’이라는 취지를 무시하고 대통령이 지명한 위원장과 부위원장 2인 체제로 1년 가까이 방통위를 운영해 온 윤 대통령에게 큰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야당이 방통위원으로 추천한 최민희 내정자(현 민주당 의원) 임명을 차일피일 미루는 등 고의적으로 2인 체제를 유지했다. 지난해 12월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이 방통위를 상대로 낸 후임이사 임명처분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에서 서울고법은 “방통위법은 정치적 다양성을 위원 구성에 반영한다”며 “그런데 이 사건은 단 2명의 위원들의 결정에 따라 이뤄져 입법 목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시했다. 대통령이 우선 해야 할 일은 새 방통위원장 지명이 아니라 5인 체제 복원을 통한 방통위의 정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