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협회 창립 60주년을 맞은 오늘의 불온한 현실은 한여름 폭염보다 뜨겁다. 언론자유 수호를 내걸고 불의에 맞서온 60년, 자유언론의 기치가 다시 타오르고 있다.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자를 압수수색하고 기소하는 언론탄압이 과거 독재시대의 잔상을 불러오고 있다. 대통령이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호기롭게 시작한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은 MBC의 ‘날리면’ 보도 이후 멈췄고, 불통이 심해졌다. 방송통신위원회의 파행은 불통의 상징이다. 1년이 다 돼가는 ‘방통위 2인 체제’는 윤석열 정부의 편협한 언론관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기자협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기자 82%가 “2인 체제가 잘못”이라고 응답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기자들은 부정적 평가 이유로 △대통령 지명 2인의 일방적 주요 정책 심의 의결 △5인 합의제 기구의 입법 취지 훼손을 꼽았다.
이진숙 방통위원장 취임 첫날 일사천리로 진행된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 선임과 KBS 이사 추천 과정은 기자들이 왜 ‘2인 체제’를 비민주적 운영 방식이라고 생각하는지 보여준다. 84명에 이른 방문진과 KBS 이사 지원자를 단 1시간45분 만에 졸속 심의해 정회 시간을 빼면 한 사람당 1분도 제대로 심사하지 않았다. 국회 과방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회의에 출석한 방통위 간부는 이사 선임과 추천이 얼마나 요식 행위였는지 증언하고 있다. “이진숙 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이 투표를 여러 차례 반복해 대상자를 압축했다. 별도의 이견 조정은 없었다”며 두 사람이 일치하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투표를 무한 반복했다고 실토했다. 독임제 기구도 아니고 이견 토론의 과정 없이 투표만 계속한 부분은 법원이 새 이사 선임을 둘러싼 효력정지 여부를 다툴 때 핵심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지난 8일 방문진 새 이사 6명 임명 처분에 대한 효력을 26일까지 잠정적으로 집행정지한 상태다. 언론계에선 2인 체제의 이사 선임이 심의와 투표 등 검증 과정이 최소한의 절차도 지키지 않은 위법적 행태라고 지적하고 있다. 미리 짜놓은 각본대로 발 빠르게 이사를 선임하지 않았냐는 의심이다. 야당 이사는 뽑지도 않고 여당 이사만 선임한 무리수는 여당 이사들이 방문진과 KBS 이사회를 장악해 방송을 좌지우지하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KBS 박민 사장 체제가 들어선 뒤 권력비판 기능이 사라진 건 MBC의 ‘가까운 미래’가 될 수 있다. 방송의 자율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설립된 방통위가 되레 방송장악의 첨병 노릇을 하고 있는 현실이 참담할 뿐이다.
방통위원장 탄핵 추진도 벌써 3번째다. 이동관·김홍일에 이어 이진숙 위원장까지 야당과 대통령의 힘겨루기가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합의제 기구라는 취지를 망각한 채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대통령과 추천권을 방임한 야당이 작금의 현실을 합작한 장본인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야당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과거 다수당일 때 손 놓고 있던 방송사 지배구조 개선 등 해묵은 과제가 곪아 이 지경에 이르렀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권력을 쥔 쪽이 방송을 정쟁의 도구로 삼아온 게 지금 벌어지는 파행의 단초다. 결국 정글의 논리만이 남았다.
한국기자협회는 창립선언문에서 “정의와 책임에 바탕을 둔 우리들의 단결된 힘은 어떠한 권력, 어떠한 위력에도 굴치 않을 것임을 선언한다”고 천명했다. 방통위가 언론 자유를 위협한다면 우리는 맞서 싸울 것임을 창립 60주년에 다시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