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5일 대전 중구에 위치한 옛 충남도청 건물인 커먼즈필드 내 강의실에 기자 13명이 모였다. 대전(주재) 지역 신문사·방송사에서 일하는 기자들로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로부터 3일 전인 7월22일 서울 중구 인근 한 식당엔 산업·벤처를 담당하는 5개 매체 기자 9명이 책을 들고 삼삼오오 모였다. 각각 공부모임 ‘지역저널리즘연구회’, ‘스타트업씬 공부방’에 참여하는 기자들이다. 기자들과 함께 강연을 듣고, 독서 클럽이 진행되는 현장을 지켜봤다. 평일 저녁 6시께, 눈코 뜰 새 없었을 일과를 마치고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거나 취재원·지인 등과의 저녁 약속 자리에 갈 법한데, 또 다시 일의 연장선인 공부를 하려는 이유가 궁금했다. ‘연대감’ ‘성장’ ‘힐링’ ‘인사이트’ 등을 키워드로 한 답이 돌아왔다.
◇대전 커먼즈필드 모두의공터실
“이런 기사를 보면 정말 가슴이 뛰지 않으세요?” 강연자의 물음에 기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탐사보도 전문 매체 프로퍼블리카가 2016년 미국 내 출산 전후로 사망한 산모 134명을 추적 조사해 시스템 부재로 인한 문제임을 밝혀낸 기획 기사 ‘로스트 마더스’를 소개하는 중이었다. 올해 처음 지역저널리즘연구회 모임이 열린 이날은 이정환 슬로우뉴스 대표가 ‘로컬 저널리즘과 솔루션 저널리즘’을 주제로 강연했다.
지역저널리즘연구회는 모두 차장급 이하 연차의 기자들로 구성돼 있다. “어려운 지역 상황 속 그래도 뭔가 해보고 싶다”며 평소 술자리에서 함께 고민을 나누던 강은선 세계일보 기자, 임효인 중도일보 기자, 최예린 한겨레 기자를 주축으로 지난해 모임이 결성됐다. 지역저널리즘연구회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 사업인 ‘찾아가는 저널리즘 특강’ 언론인모임 부문에 선정돼 올해도 강연 형식의 공부 모임을 계속하고 있다.
모임은 기자들이 평소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은, 새로운 방식의 기사 쓰기를 시도하는 전문가를 주로 섭외해 강연을 듣고 취재 현장에서 나온 고민과 고충을 서로 나누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동안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 천현우 작가 등의 강연을 통해 여러 아이디어를 얻어갔다. 공식적으로 등록된 모임 구성원이 아니더라도 해당 강연에 관심 있는 기자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날도 입사 1년차 충청투데이 신입기자 3명이 강의실을 찾았다.
이날 강연은 지역 언론사에서 시도할 수 있는 솔루션 저널리즘 아이디어 제안 외에도 독자들에게 읽히는 기사는 무엇인지에 대한 여러 팁이 나왔다. 바이스미디어, 쿼츠, 버즈피드 등 한때 뉴미디어 혁명을 일으켰던 미 언론사들의 파산 사례, 국내 언론의 수익 구조 한계 등 앞으로 남아있는 고민거리도 던져졌다. 기자들은 열심히 강의 내용을 받아 적거나 본인에게 중요해 보이는 발표 자료 슬라이드마다 사진 촬영을 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나의 생각을 강요하려고 하는 순간 독자들은 오히려 떨어져 나간다. 전체 그림을 보는 전략, 본질을 꿰뚫는, 변화를 만드는 실질적인 힘을 갖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있다”는 이정환 대표의 말에 몇몇 기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언론사 조직의 혁신이 병행돼야 한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좋지 않은 언론사에서 좋은 기자로 살아남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구태의연한 조직에서 지속적인 혁신을 도모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보여준 솔루션 저널리즘 사례는 기자가 직접 어떤 현장에 가서 함께 생활을 해보고 해법을 찾아가는 것들인데, 그것만 정답인 걸까. 다른 방식의 접근 방법은 없을까.” 강연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 기자들의 질문엔 그동안 품고 있던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였다.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인근 한 레스토랑
‘스타트업씬 공부방’은 벤처 스타트업계 동향과 산업 연구로 공부 분야가 특정된, 조금 더 실무적인 성격의 모임이다. 올해 세 번째 모임인 이날은 책 ‘투자자의 생각을 읽어라’를 펴낸 스타트업 투자자 전화성 씨엔티테크 대표가 참석해 저자와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간 기자들은 스타트업씬 공부방을 통해 ‘영국·인도 등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펀드의 조성과 투자실무’ 등을 주제로 한 업계 전문가들 강연을 들으며 업계의 맥을 짚고,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해 왔다.
최근 몇 년 사이 스타트업 창업, 투자에 대한 사회 전반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스타트업계를 주요 출입처로 두고 전문적으로 다루는 언론사들도 많아졌다. 그만큼 해당 분야에 대한 기자들의 전문성 향상도 필요해진 시점이다. 다만 홍보실이 있고 기업 정보가 공개된 대기업·중견기업에 비해 신생 기업인 스타트업이나 투자처에 대한 정보를 기자들이 얻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기자들이 스타트업계를 취재하기 위해선 “일일이 발로 뛰며 배워야 하는 상황”이다.
류준영 머니투데이 기자가 스타트업 전문 플랫폼 ‘유니콘 팩토리’를 담당하는 자사 기자들을 중심으로 같은 분야를 취재하는 타 언론사 기자들을 모아 스터디 모임을 연 이유다. 삼성언론재단 연구모임활동 지원 사업에 선정돼 지난 5월부터 모임이 이어지고 있는데, 선정된 모임 중 스타트업을 분야로 한 스터디는 사실상 처음이라고 한다. 류 기자는 “실질적으로 취재 현장에서 기자들은 스타트업 투자라는 어떤 비하인드의 이야기를 알아내는 데 고충을 겪었다. 어떻게 돈의 흐름이 돌아가는지 알면 그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기사도 깊이 있게 작성할 수 있는데 그걸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며 “우리끼리 모여서 투자자들을 불러 이야기를 들으면 훨씬 낫지 않을까 싶었고, 실제로 참여하는 기자들의 반응이 되게 괜찮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모임에선 전화성 대표를 향해 기자들의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역플립’(해외 법인이 한국으로 본사를 이전하는 것), ‘팁스’(TIPS, 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 프로그램), ‘엑싯’(스타트업의 IPO나 인수합병 등을 통해 투자자들이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는 것) 등 이들의 대화 속엔 미디어를 담당하는 기자로선 뜻을 바로 알아채기 어려운 단어들이 오고 갔다. 옆자리에서 기자에게 중간중간 단어의 뜻을 알려주던 남미래 머니투데이 기자는 “스타트업에선 초기 투자를 받기 어려워 정부가 지원해주는 팁스라는 제도를 활용하는 수요가 높다. 해외 스타트업에서도 팁스를 받기 위해 역플립한다는 말씀인데, 이런 얘긴 처음 듣는 사례라 계속 질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는 계속 공부해야 하더라.”
강연이 끝나고 대전 한 식당에서 이어진 뒤풀이 자리. 기자에게 맥주를 따라주며 최혜린 한겨레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역 기자들에게 이런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최 기자는 “지역 상황이 어려운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절망감을 많이 느끼곤 한다”면서 “이런 기회 아니면 서로 말하기 힘든 부분도 많은데 함께 공부하면서 지역 기자라는 연대감, 유대감이 생긴다. 그걸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함께 강연을 들으며 우리도 좋은 콘텐츠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 기회를 찾아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최 기자는 “대전은 서울과 달리 이슈가 휘몰아치는 상황은 아니라서 지역 사안을 발굴하고 내러티브 기사 등 좋은 콘텐츠를 쓸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지역 기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는데 좋은 교육 프로그램도 서울에 몰려 있어서 소외되는 점도 분명히 있다”며 “오늘 강연에 나온 80여개 언론사들이 모여서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례처럼 여러 대전 지역 언론사들과 협업 프로젝트를 구체화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스타트업씬 공부방 구성원인 이영아 더벨 기자도 “업계에 필요한 정보나 취재에 바탕이 되는 지식을 얻는 데 큰 도움이 되면서도 기자들마다 관심 있는 분야나 인사이트가 다를 텐데 이런 자리를 통해 취재 중에 생겼던 고민을 서로 나누면서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를 확장해서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공부 모임에 지속적으로 올 수 있도록 서로 간 여러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광화문에서 모임을 마친 후 류준영 기자는 “기자들 사이에서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선후배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참여하는 기자들에게 이 모임을 공부 목적만이 아닌, ‘힐링’ 차원으로 생각하라고 말한다”며 “항상 전체 인원의 90% 이상이 참여한다. 강연, 독서 토론 등 모임 포맷을 달리해보려고 하고, 모임 장소를 강의실이나 스터디 카페, 식당 등 매번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임효인 중도일보 기자는 “누구 한 명이 모임을 주도하는 게 아니라 강의 주제를 함께 고민하면서 주제를 제안한 사람이 강연자와 접촉하고 초대까지 맡는 식으로 각자의 역할이 주어진다”며 “우리에겐 이건 일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나를 위한 공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자로 일하는 데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에서 계속 모이게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