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임명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심문이 19일 진행된 가운데, 이번 소송을 제기한 방문진 이사 공모 지원자들과 현직 방문진 이사들이 재판부의 합리적인 판단을 촉구했다.
박선아 방문진 이사는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권력을 남용하고 무도한 행정 권력에 대항해 기댈 곳은 사법부밖에 없다”며 “사법부가 민주주의 원칙과 삼권분립 원칙에 기초해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탄압하려는 시도들에 대해 준엄하게 꾸짖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박선아 이사는 또 “방통위 구성 자체가 위법적인 상황에서 법률에 나와 있는 검증 절차 없이 이사를 임명했다는 것이 저희의 주된 주장”이라며 “오늘 심문 기일 이후 일주일 정도 재판부가 숙고하실 텐데 정당한 판결을 내려주실 것을 다시 한 번 간곡하게 요청 드린다. 이번 판결은 종전 3개의 판결에서 확인된 방통위 2인 체제의 위법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판단 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방문진 이사 공모에 지원했던 조능희 전 MBC플러스 사장도 이날 집행정지 심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집행정지가 받아들여질 것이라 본다고 자신했다. 조능희 전 사장은 “방통위가 합의제 기관인 것은 방송의 기본 개념인데, 대통령이 임명한 두 명의 위원이 마치 장·차관처럼 의결을 하는 것은 무효”라며 “기피 신청을 스스로 제척한 것 역시 법률 위반이다. 게다가 심의를 안 하고 투표만 했다고 고백했는데, 이것 역시 심각한 위법 행위라 집행정지를 신청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방문진 이사는 9명인데 방통위가 6명만 임명하고 3명은 남아달라고 한다”며 “무슨 기준으로 방통위에서 그걸 정했냐고 물으면 대답이 없다. 이런 식으로 대한민국의 공직을 심의 의결도 안 하고 불법적으로 정한다는 것은 전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김태규 방통위 부위원장은 취임 당일인 지난달 31일 방문진과 KBS 이사 선임안을 의결했다. 이들은 약 1시간40분 동안 진행된 회의에서 KBS 이사 후보자 52명 중 7명을, 방문진 이사 후보자 31명 중 6명을 임명했다.
이에 방문진 이사 공모에 지원했던 조능희 전 사장과 송요훈 전 아리랑국제방송 방송본부장, 송기원 MBC 저널리즘스쿨 전임교수는 1일 이번 이사 임명이 위법하게 진행됐다며 방문진 이사 임명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과 함께 집행정지 신청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5일엔 방문진 현직 이사인 권태선, 김기중, 박선아 이사 3명도 같은 내용의 소송을 행정법원에 제기했다.
행정법원은 이와 관련, 방통위가 의결한 방문진 신임 이사 임명의 효력을 26일까지 정지하라고 8일 결정했다. 당초 9일 심리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방통위가 기일 변경을 신청해 심리가 19일로 연기된 데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 대한 심리 및 종국결정에 필요한 기간 동안 임기 만료 예정인 방문진 이사들과 그 후임자로 임명된 자들 사이의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며 “잠정적으로 처분의 효력을 정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심문 모두 비공개 진행…시민사회단체 1만5000여명 탄원서 제출하기도
이날 두 건의 심문은 모두 비공개로 진행됐다. 박선아 이사는 심문 이후 기자들과 만나 “심문에선 가처분 소송에서 얘기하는 신청인 적격, 회복할 수 없는 손해 같은 일반적인 법리와 관련한 얘기들이 오고 갔다”며 “한 가지 깊게 들어간 것은 방문진법 6조 2항의 직무수행권, 그러니까 임기가 연장된 이사의 직무수행권이 종전에 해임된 이사로서 가지고 있던 3년 임기의 직무수행권과 동일한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그 부분을 양 당사자가 좀 더 깊이 있게 보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부가 심문 기일을 열흘 연기하면서 종전 이사들이 새로운 이사 선임에 대해 다툰 법리를 굉장히 깊이 있게 보신 것 같다”며 “부족한 내용에 대해선 21일까지 추가 제출을 부탁하셨고 잠정 집행정지를 더 연장할 순 없다고 말씀하셨다. 26일 전에는 결론을 내려주실 것”이라고 전했다.
조능희 전 사장도 심문이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방통위의 방문진 이사 선임 과정의 위법함을 재판부에 설명했다고 밝혔다. 조 전 사장은 “방통위에선 심의 다 했고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얘기해 공방이 있었다”며 “본안 소송이 대법원까지 가서 이긴들 이미 MBC 사장 선임 등 주요 기능은 다 끝나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가처분이 매우 중대하다는 것이 저희 주장의 핵심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MBC 지키자! 시민모임’은 이날 심문에 앞서 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적인 방문진 이사 선임을 법원이 바로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기자회견 직후 시민 1만5000여명의 서명이 담긴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시민모임은 “합의제 행정기구인 방통위 입법정신을 부정하고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장, 부위원장 두 사람이 사실상 미리 내정된 자들을 이사로 발표하고는 거듭 인선투표를 거쳤다고 한다”며 “물리적 시간상 불가능한 선임절차다. 또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그 직을 수행할 자격과 능력이 없음이 국회 청문회를 통해 낱낱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이어 “MBC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뜻은 여와 야에 대한 지지를 넘어 민주주의와 민족정기, 한국사회가 수많은 희생을 통해 합의한 최소한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라며 “그 절실함으로 불과 일주일 사이에 1만5000여명의 시민들이 ‘이진숙 방통위원장의 위법한 방문진 및 KBS 이사 선임효력 정지’ 서명에 참여했다. 재판부에서 부디 이 뜻을 헤아려 주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