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기 KBS 이사회가 반쪽짜리로 출범했다. 신임 이사들로 구성된 KBS 이사회가 야권 성향 이사 4명이 불출석한 채 여권 성향 이사 7명만으로 4일 첫 이사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KBS 야권 이사 4명(김찬태·류일형·이상요·정재권)이 이날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는 이들이사들과 조숙현 전 KBS 이사가 8월27일 방송통신위원회와 대통령실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한 KBS 새 이사 임명 집행정지 신청과 맞물려 있다. 법원 결정이 나오기도 전에 새 KBS 이사회가 이사회를 개최하며 임기를 시작한 것이다.
이날 야권 이사 4명은 이사회 개최 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 이사들이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며 “대통령이 임명한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의 ‘2인 상임위원 체제’가 위법적으로 KBS 새 이사 7명을 추천한 것은 원천무효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앞서 7월31일 방통위는 전체회의를 열어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 2인 상임위원만의 의결로 KBS 이사 정원 11명 중 여권 성향으로 분류되는 7명의 이사만을 선임했다. 이 과정에서 방통위는 기존 KBS 야권 이사 5명 중 조숙현 이사만을 전임자로 지목했고, 나머지 야권 이사 4명에 대해선 추후 논의하겠다고 해 이들 이사들은 차기 이사회까지 임기를 이어가게 된 상황이었다.
이번 KBS 이사회가 첫 이사회를 소집한 과정도 석연치 않다는 비판도 나왔다. 통상 이사회 소집통보는 회의 개최 5일전 이사들에게 알리는데, 이번 이사회는 이사들에게 ‘이사장 선출’을 긴급 안건으로 상정해 회의 2일 전 소집통보를 했다. 2021년 출범한 전임 이사회의 경우 그해 9월1일 소집통보를 해 닷새 뒤인 9월6일 첫 이사회를 가진 바 있다. 또 이번 ‘이사장 선출’ 안건이 긴급안건으로써 요건을 갖췄는지에 대해서도 지적이 나왔다. 이사회 사무국이 이사들에게 밝힌 해당 안건을 긴급 안건으로 올린 이유는 ‘원활한 이사회 운영을 위해서’다.
야권 이사 4명이 기자회견에서 “오늘 이사회에서 긴급안건으로 이사장 선출을 강행하고 나면 새 이사회가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속도전’에 나설 게 뻔하다”고 우려한 이유다.
이들은 “새 이사회는 KBS 구성원 절대 다수가 반대하고 있는 박민 사장의 조직개편안 처리는 물론이고, 오는 12월에 임기가 끝나는 박민 사장의 후임자 선정 작업도 서두를 가능성이 크다”며 “법적 정당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추천, 임명된 이사들의 속전속결과 일방통행으로 처리된다면,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을 게 분명하다”고 했다.
이어 “시간이 많지 않다”며 “이미 법원은 방통위 ‘2인 체제’가 합의제 기관에 요구되는 의사형성 원리에 어긋나는 결정을 했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KBS 새 이사 추천, 선임에 대한 효력정지 소송에서도 법원이 하루빨리 공정한 결정을 내려 KBS가 바른 공영방송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 수 있게 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향후 이사회 불참 여부에 대해 정재권 이사는 “법원이 조속히 결정을 내려줘야 KBS를 둘러싼 혼란이 적어도 장기화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재판의 진행 과정을 보면서 저희 이사들이 이사회 참여 여부에 대한 논의를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상요 이사는 신임 이사회 임기가 법원 결정 전 시작한 데 대해선 “방통위가 재판부 기피신청을 제기하며 상당히 시간이 벌어진 사이 새로운 이사회가 진행된 것”이라면서 “그러나 새 이사회 구성과 선임 과정이 방통위 ‘2인 체제’에서, 졸속적으로 처리됐기 때문에 법원이 현재 상황적 조건보다 근원적인 문제에 입각해 판단을 내려 줄 거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KBS 이사회는 이날 여권 성향 이사 7명만으로 임시 이사회를 열어 서기석 이사를 이사장으로 호선했다. 이들 이사들은 서 이사를 이사장으로 단독 추천했으며 이어진 거수 절차에선 서 이사 제외 이사 6명 모두 서기석 이사장 선출에 찬성했다.
서기석 이사장은 “KBS가 방송의 공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공사 경영의 최고 의결기관이자 관리·감독기관으로서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서 이사장은 수원지방법원장과 서울중앙지법원장을 거쳐 헌법재판관을 지냈다. 서 이사장은 직전 이사회에서 해임된 윤석년 전 이사의 후임으로, 지난해 8월9일 보궐이사로 임명된 바 있다. 이어 그해 8월14일 해임된 남영진 전 이사장에 이어 일 년여 간 KBS 이사장직을 수행했다.
지난해 10월 KBS 이사회가 박민 사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당시 사장 후보 3인 대상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자 KBS 이사회는 박민·최재훈 후보를 대상으로 결선 투표를 진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서기석 이사장이 돌연 휴회를 선언하고 이사회를 연기했다. 이 과정에서 최재훈 후보가 사퇴하면서 박민 후보가 사장 최종 후보가 됐다. 당시 야권 이사들은 “낙하산으로 지목된 후보가 여권 이사 내부의 이탈표로 과반 득표가 불확실해지자 표결을 무산시키는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후 여권 성향인 이석래 전 KBS 이사가 임기를 마치며 8월29일 올린 사내게시글에서 “현 사장의 임명을 제가 반대하던 시기 저에 대해 근거없는 마타도어를 퍼트리고 뒷조사에 협박까지 하면서 충성한 사람들이 있다”며 당시 이사회의 사장 선임 과정을 공개해 파장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야권 이사 4명은 기자회견에서 “이석래 이사가 박민 사장 선임 과정에서 벌어진 비상식적이고 부당한 ‘압력’을 공개한 것은 새 이사회의 효력정지 필요성을 더욱 확인시켜주고 있다”며 “당시 사장선임 규칙 등을 위반하며 박민 사장 선임을 주도한 서기석 이사장 등 두 명의 여권 성향 이사가 그대로 13기 이사회 이사로 추천, 임명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