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10월24일, 180여명의 기자들이 동아일보 편집국에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권력의 압박에 맞서 언론 자유를 지키고자 기자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사건으로, 한국 언론사에 한 획을 그었다. 50주년을 맞는 오늘날, 이들의 용기와 선언의 의미는 더욱 뜻깊게 다가온다. 언론 자유에 대한 내외부적 위협이 어느 때보다 커졌기 때문이다.
언론에 대한 노골적인 폭력과 탄압이 난무했던 과거와 비교해 표면적으로 언론 자유는 꽃핀 듯 보인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언론 자유는 켜켜이 쌓인 구조적 문제 속에서 빛이 꺼지기 직전이다. 현대 언론이 맞서야 할 상대가 정치 권력을 넘어 자본과 기술로까지 확장된 점만 봐도 그렇다. 디지털 미디어의 부상으로 인한 경제적 위협과 인공지능(AI) 기반의 딥페이크 등이 가하는 기술적 위협은 우리 언론이 부닥친 새로운 난관이다. 권력의 위협 또한 예전보다 더 교묘해졌다. 오늘날 권력의 눈 밖에 난 보도를 한 언론인과 언론사는 검찰의 압수수색 대상이 되거나, 과징금 부과 등 징계를 받거나,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공영방송이라면 정부의 지원 삭감까지 감수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언론계 내부의 연대감이 과거보다 크게 취약해진 점은 특히 뼈아프다. 돌이켜보면 50년 전 우리가 언론 자유를 압박하는 외부 위협을 돌파한 배경에는 개별 언론인의 용기뿐 아니라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 연대의 힘이 있었다. 동아일보의 실천선언은 이틀 만에 전국 31개 언론사의 지지를 받아 힘을 키웠고, 정권의 광고 탄압 또한 시민들의 격려 광고 앞에 빛이 바랬다. 무엇보다 ‘기자에 대한 불법연행이 자행된다면 그가 귀사할 때까지 퇴근하지 않는다’는 동료들의 약속은 탄압의 공포를 견딜 버팀목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각 언론사의 개별적 위기는 언론계 전체의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다. 동료가 공동 취재단에서 제외되거나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어도 언론계 전체의 강력한 대응은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위험할 정도로 위축된 언론 자유를 회복하려면 자유언론실천선언 당시의 강력한 연대를 되찾아야 한다. 물론 언론 환경이 완전히 달라진 상황에서 이런 주장은 자칫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자본·기술의 위협 속에서 날로 심각해지는 고용 불안, 세대 간 가치관과 업무 방식 차이에서 비롯하는 조직 내외부의 갈등,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각 언론사의 정파성, 계속된 실패에서 비롯한 열패감 등은 우리를 단합보다 분열로 이끈다. 그럼에도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오로지 연대뿐이다.
다만 실천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자기희생적 투쟁보다는 모두의 승리로 이어질 새로운 연대의 방식을 고민하자. 갈 길이 멀고 정답도 없지만 우선순위는 있다. 안으로는 뿔뿔이 흩어진 언론계를 하나로 모을 구심점을 찾아야 한다. 세대 간 차이를 이해하고 공동의 미래를 고민할 실질적인 논의의 장이 마련된다면 좋을 것이다. 언론인에 대한 부당한 외부 압박에 공동 대응하는 시스템 도입 등도 고민해볼 만하다. 밖으로는 잃어버린 독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다. 언론 자유를 지키는 여정에는 시민들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어려운 일이지만 오늘날에도 유효한 자유언론실천선언의 정신이 나침반이 돼 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나침반을 따라갈 용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