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열풍이 우리에게 남긴 것

[이슈 인사이드 | 문화] 사지원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케이팝이 대중문화를 정복한 과정을 설명할 또 다른 기회.”


21일(현지 시각) 미국 CNN이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6월20일 공개된 이 작품은 공개 두 달이 넘은 지금까지도 ‘신드롬’이라는 단어가 과하지 않을 정도로 글로벌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케이팝 걸그룹 헌트릭스. 비활동기에는 ‘퇴마’를 한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인기를 얻었다. /넷플릭스 제공

우선 영화는 넷플릭스 영화 부문 글로벌 누적 시청 2억회를 돌파하며 역대 흥행 2위에 올랐다. 작품에서 파생된 콘텐츠의 영향력도 막강하다. 가상 걸그룹 ‘헌트릭스’가 부른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Golden’은 세계 양대 차트로 불리는 미국 빌보드 차트 ‘핫 100’과 영국 오피셜 차트 ‘톱 100’ 모두에서 1위를 차지했다.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한국 전통문화 요소 역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는 22일 “케데헌이 ‘엔칸토’, ‘겨울왕국’ 같은 디즈니 작품들이 달성한 문화적 영향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평했다.


하지만 국내 콘텐츠 업계의 시선은 다소 복잡하다. 소재는 분명 케이팝(K-pop)과 한국 문화지만, 콘텐츠를 만든 주체는 일본 자본이 들어간 소니픽처스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투자와 배급은 미국 넷플릭스가 맡았다. 케데헌이 ‘K콘텐츠’가 맞냐는 논쟁이 벌어진 이유다.


최근 부산에서 열린 ‘글로벌 스트리밍 페스티벌’ 간담회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드러났다. “케데헌을 우리가 제작할 순 없었나요?”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의 질문에 최주희 티빙 대표는 “케데헌을 말하면 저희는 참 뼈아프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고 우리나라 플랫폼에서 태워져서 글로벌에 알려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케데헌은 한국적 정체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SM 출신 작곡가 이재, 프로듀서 테디, 안무가 리정 등 케이팝을 대표하는 제작진이 참여해 사운드와 퍼포먼스를 완성했다. 곡의 멜로디와 한국어 가사는 케이팝 특유의 감각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또 글로벌 팬덤이 케이팝을 소비하는 방식을 그대로 반영해 작품의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작품 속 한국 문화의 자연스러운 노출도 주목할 만하다. 과거 서구에서 아시아 문화를 과장하거나 왜곡하던 사례와 달리, 케데헌은 컵라면과 김밥, 남산타워 같은 일상적인 소재를 현실감 있게 표현했다. 반팔과 패딩이 공존하는 계절감, 식당에서 수저 밑에 깔린 냅킨 같은 디테일도 한국의 ‘지금’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이쯤 되면 ‘무료 홍보’에 가까울 정도다. 이는 단순한 배경 묘사를 넘어 한국의 라이프스타일을 전 세계에 자연스럽게 각인시키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적 논쟁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최근의 흐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해외에서 한국 문화로 콘텐츠를 만든 것 역시 한국이 소위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 기세를 타 케데헌을 계기로 케이팝에 관심을 가진 글로벌 시청자들을 어떻게 팬덤으로 유입시키고, 더 많은 한국 콘텐츠로 연결할지가 관건이다. 실제로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8월17~23일 기준 전 세계 ‘Korea’ 검색량은 2022년 말 이후 2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론 한국에서 케데헌 같은 대형 프로젝트가 나오기 어려웠던 현실을 짚어보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나친 비관이나 흥분은 경계해야 한다. 대신 현실을 차분히 분석하고, 이번 케데헌 열풍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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