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기자상] 1년 9000권 펴낸 수퍼 출판사, 그 뒤에 AI 숨어 있었다

[제423회 이달의 기자상] 박진성 조선일보 기자 / 취재보도2부문

박진성 조선일보 기자.

한 원로 교수의 목소리를 잊지 못합니다. 찍어내듯 쏟아지는 AI 책의 평가를 부탁했을 때의 일입니다. 오개념 바로잡는 데 평생을 썼다는 교수는 “AI의 오류를 낱낱이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이튿날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책 수준이 높고 지식량도 많다”며 “50대 이상 학식이 깊은 교수 열 명이 모여 쓴 수준”이라고 말했습니다. AI로 연간 9000여 종의 책을 내는 출판사 취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른바 ‘조져야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입체적인 시각으로 보게 됐습니다.


문화부 기자들은 업무 특성상 서점과 도서관을 자주 이용합니다. 조선일보 문화부는 우연히 수상한 책 한 권을 발견했습니다. 어딘가 어색한 문장, 빈약한 저자 소개란이 눈에 띄었습니다. 책과 판매처 어디에도 AI의 도움을 받았다는 설명은 없었습니다. 의심이 들어 취재에 착수했습니다.


쉬운 취재는 아니었습니다. 첫 보도까지 한 달 이상이 소요됐습니다. 서점과 도서관 속 수백 수천만 권의 책 중 무엇이 AI로 쓰였는지 찾아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특히 출판사들은 AI로 썼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아 더욱 쉽지 않았습니다. 교보문고 등 대형 서점에 올해 책을 출간한 전체 출판사 현황 자료, 국립중앙도서관에 올해 납본된 책 리스트 등을 수작업으로 분류하며 취재했습니다.


인류 과학 발전사가 그랬듯 이번에도 AI 기술은 인간 인지와 윤리를 앞서갔습니다. AI 저자 표기법, 국립도서관 납본 지침 등 제도의 공백도 메워야 합니다. 아직 AI가 완전하지 않은 지금이 골든타임입니다. 앞으로 계속 고민하고 질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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