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한다. “영남에 맛있는 요리가 있어?” 때론 이런 말도 덧붙인다. “거긴 한국에서 제일 먹을 게 없는 도시들이야.” 과연 그럴까? 호남에서 4년, 서울에서 18년, 나머지 시간을 영남에서 살고 있는 필자로선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뭔가 말하고 싶은 열망에 몸이 들썩거린다.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은 그런 이유에서 발원한 졸고다. [편집자 주]
오늘의 주인공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전설 혹은, 풍문처럼 떠도는 2마리 말(馬) 이야기부터 해볼까 한다.
비행기는 물론 자동차도 없던 2300여년 전. 지구의 1/3쯤을 자신이 통치하는 영토로 만들었던 왕이 있었다. 알렉산더다.
그는 부케팔로스라 이름 붙인 말을 타고 다녔다. ‘사람을 먹이로 삼는다’는 괴소문이 떠돌던 거칠기 짝이 없는 말을 겨우 열두 살의 알렉산더가 길들였다니, 크게 될 사람은 어릴 때부터 뭐가 달라도 달랐던 듯.
부케팔로스는 일생을 멈추지 않고 달렸다. 티베트에서 발원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인더스강 유역의 전투에서야 그 휘황했던 질주를 멈추고 죽는다. 슬픔을 주체할 수 없던 알렉산더는 그 말이 묻힌 곳을 기억하기 위해 ‘알렉산드리아 부케팔리아’라는 도시까지 건설했다고.
이번엔 ‘오추마’ 이야기다. 이립(而立)에 중국 전체를 자신의 발아래 무릎 꿇렸던 서초패왕(西楚霸王) 항우.
그는 칠흑처럼 검고 바람같이 빠른 말 오추마를 제 몸처럼 아꼈다. 거구의 항우를 태우고도 하루에 1천 리를 거뜬하게 달렸던 오추마는 주인인 항우가 오강(烏江)에 이르러 전투에서 목숨을 잃는 걸 제 눈으로 봤다.
더 이상 자신이 태우고 다닐 호걸이 없음을 직감한 오추마는 놀랍게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항우 외에는 누구도 등에 싣지 않겠다는 늙은 말의 결기였을까? 까마귀(烏)처럼 검은 오강으로 걸어 들어가 익사한 오추마. 명백한 자살이었다.
속도로 말해보자. 땅 위에 부케팔로스와 오추마가 있었다면, 물속엔 참치가 있다. 서울과 부산까지의 거리를 3시간이면 거뜬히 헤엄친다. 시속 160km. 고속버스보다 빠른 어마어마한 스피드다.
흥미롭게도 참치는 잠을 잘 때도 헤엄친다고 한다. 이 물고기가 멈추는 순간은 그물이나 낚시에 걸려 뭍으로 끌어올려질 때가 유일하다. 쉼 없이 유영하는 것으로 존재를 증명하는 거대한 물고기. 평생 헤엄쳐야 한다는 숨 가쁘고도 슬픈 운명.
북대서양에선 드물지 않게 몸길이가 3m에 육박하는 300kg대의 참치가 포획되곤 한다. 다른 바다에서 잡히는 참치 역시 몸집이 어린애보다 큰 경우가 흔하다.
‘다랑어’라고도 불리는 참치는 그 종류가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통칭 ‘참치’라고 칭하는 건 참다랑어일 경우가 많다. 참다랑어는 크기만 놀라운 게 아니라 가격과 맛 또한 혀를 내두를 정도로 놀랍다.
참치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일본에선 해마다 연초에 ‘이벤트성 참치 경매’가 열린다. 질 좋은 참치 한 마리가 10~20억원에 거래됐다는 뉴스는 볼 때마다 신기할 정도.
이제는 한국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무한 리필 참치 집의 가격도 만만찮다. 물론 1인당 2~3만원대의 저렴한 메뉴도 있지만, 눈다랑어나 황새치가 아닌 참다랑어의 부드럽고 기름진 뱃살을 몇 점 맛이라도 보려면 10만 원 안팎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월급쟁이가 자주 먹기엔 비싼 안주가 분명하다.
예전엔 우리나라 인근 바다에선 참치가 잡히지 않았다. 원양어선이 잡는 생선이었다. 그러나, 갈수록 뜨거워지는 바닷물 탓에 최근엔 동해에서도 참치를 볼 수 있게 됐다. 드물게는 제주도 인근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회사 근처에 단골 초밥집이 하나 있다. 나와 성(姓)이 같은 웃음 선량한 50대 주인장과 친구처럼 지낸 지 오래다. 그가 몇 해 전부터 괜찮은 참치가 가게에 들어온 날이면 일부러 문자를 보내온다.
“홍 부장, 참치 좋은 게 왔네. 이따 저녁에 소주 한잔 합시다.”
지난해 여름. 경상북도 영덕 앞바다에 쳐둔 정치망에 100kg이 넘는 참치 1300여 마리가 걸렸다. 정상적으로 경매가 진행됐다면 30억원이 넘는 물량이었다.
그러나, 그 참치 모두는 한 마리 남김없이 폐기돼 사료공장으로 보내져야 했다. 어획량을 규제하는 국제협약 탓이었다.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가 국가별로 참치의 연간 어획량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었던 것.
그 소식이 전해진 날. 둘 모두 모주꾼인 초밥집 주인장과 나는 알렉산더가 부케팔로스의 죽음을 슬퍼하듯, 오추마가 항우의 최후를 눈물 흘리며 바라보듯 애달파 했다.
“아이고, 저 비싸고 맛있는 안주를….”
[필자 소개] 홍성식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고교 시절.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라는 교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김지하와 이성부의 시를 읽으며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드나들었다. 그 기질이 지금도 여전해 아직도 스스로를 ‘보편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착각하며 산다. 노동일보와 오마이뉴스를 거쳐 현재는 경북매일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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