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가부장적 폭력성 드러내는 비판적 보도를

[언론 다시보기] 김미선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학술연구교수·<여사장의 탄생> 저자

김미선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학술연구교수.

2월28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은 작금의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핵심적인 이슈다. 하지만 한국 언론 보도의 대다수는 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입장을 전파하는 따옴표 저널리즘에 그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쟁으로 유가나 증시 변동 등 국제 및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만 주목해 왔다. 이러한 한국 언론의 보도 양태를 두고 몇몇 언론에서는 자성과 함께 비판적 목소리가 제기됐다. 대표적인 기사로는 <“한국 언론, 전쟁 보도에 ‘증시’ 렌즈만 가진 것 같다”>(미디어오늘)와 <이란 침공 전쟁, 한국 언론은 트럼프 말과 한국 주식에 더 집중해 보도했다>(프레시안)를 꼽을 수 있다. 이러한 한국 언론의 보도 방식은 여성과 어린이의 희생과 고통은 물론, 전쟁의 근본적 속성이자 성격인 가부장적 폭력성을 축소하거나 비가시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국 언론에서 보도한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관련 여성 기사로는 그나마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3월2일 호주에서 열린 2026 아시아축구연맹 여자 아시안컵 경기에서 국가 제창을 거부한 이란 여자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신변 위협과 안전을 우려해 호주로 일부 망명을 신청한 사건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란에 대한 공습 첫날, 호르모즈간주 미나브에 있는 ‘샤자라 타이이바’ 여자 초등학교를 공습해 이란의 교사와 학생 170명 이상이 사망한 사건이다. 테헤란 타임스는 9일자 신문 1면에 사망한 초등학생의 사진을 게재했다. 한국 언론의 일부 매체가 이를 보도하는 것에 그쳤다. 이러한 보도만으로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시작한 이 전쟁의 본질적인 속성과 여성의 고통을 제대로 드러내기는 어렵다.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이 “왜 지금”인가라는 이유로 이란의 핵 개발 임박이라든가 미국의 이란과의 핵 협상 결렬 등이 군사전문가, 외교가, 중동학자 등에 의해 언급됐다. 하지만 그보다는 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라는 남성 정치인을 전경화할 필요가 있다. 전쟁을 일으킨 이면의 본질적 이유는 남성 정치인의 가부장적 폭력과 부패 그리고 정치적 위기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을 일으킨 시점은 그가 미국 내에서 엡스타인 성착취 사건에 연루된 것을 둘러싸고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던 시점이다. 이스라엘의 총리인 네타냐후 역시 자국 내에서 총리 독직과 부패로 기소돼 재판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쟁 발발의 핵심적 기저에는 남성 정치인의 가부장적 권력의 폭력성이 내재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 행위는 엡스타인 사건으로 성착취 당한 미성년자의 피해를 비가시화하는 것은 물론, 이를 위해 이란의 나이 어린 여학생이 사망한 것으로 대체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결국 전쟁의 시작과 실행 주체는 남성 정치인이며, 그로 인한 피해는 여성과 아이에게 돌아갔다. 한국 언론의 전쟁 보도가 유가나 주식 등의 경제적 수치에 매몰된다면, 전쟁의 가부장적 폭력이라는 진실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므로 이란 여성의 피해와 파괴된 일상을 가시화하고 특히 취재원으로서 이란 여성을 확대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통해 이란 여성이 겪는 전쟁의 고통을 드러내고, 이들에게 전쟁이 어떻게 이해되는지를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맥락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SNS에 올라온 이스라엘의 공습을 기뻐하며 히잡을 벗고 춤추는 이란 여성을 보도하는 것은 미국이 벌인 제국주의적 전쟁을 옹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이란 여성의 사회적 위치, 민주주의를 위한 히잡 시위와 같은 이란 여성의 역사와 운동적 실천을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관점에서 심층적으로 보도할 필요가 있다. 즉 한국 언론은 가부장적·제국주의적 전쟁을 비판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전쟁 보도의 정도를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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