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공개된 통계를 보면 중국은 미국이 세운 무역장벽의 우회로를 찾은 듯하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미·중 상품교역 총액은 4147억 달러로 전년보다 28.7% 줄었다. 미국의 대중 수입도 29.7%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세안 국가로부터의 상품 수입은 28.9% 늘었다.
중국이 아세안을 우회 수출 거점으로 활용하면서 대미 수출을 이어간 결과다. 특히 베트남은 멕시코와 중국을 제치고 미국의 최대 무역적자 상대국으로 올라섰다. 동시에 대중 수입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중국이 빠진 자리를 아세안이 메운 듯하지만, 실상은 중국산이 제3국을 거쳐 미국으로 향하는 흐름이 더 짙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겉으로 보면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데 실패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미국의 대중 적자 축소는 ‘원산지 바꾸기’의 착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헛스윙했다고 평가하기엔 아직 성급하다. 중국의 고성장을 떠받쳐온 ‘자국 생산·대미 직수출’ 공식이 예전처럼 통하지 않게 된 것은 중국엔 뼈아픈 변화일 수밖에 없어서다.
중국 기업은 이제 동남아 현지에 공장을 세우고, 부품과 소재를 보내고, 조립과 물류를 다시 짜고, 원산지 규정을 맞추고, 미국의 추가 규제 가능성까지 감안해야 한다. 같은 1달러를 수출하더라도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자본과 시간, 불확실성을 떠안아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의 관세가 중국 상품을 막지 못했더라도 중국의 수출 방식을 더 비싸고 복잡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전략적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교역액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급망 구조의 변화다. 맥킨지글로벌연구소(MGI)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해 세계 교역이 지정학적 긴장 속에 계속 재편됐고, 동남아가 제조와 조립의 허브 역할을 키우는 동시에 중국과의 상류 공급망 연결도 유지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중국이 공급망에서 밀려난 것이 아니라 더 위쪽으로 올라갔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변화가 중국에 마냥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완제품 생산과 고용, 세수, 직접투자 유치의 일부가 동남아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부품과 소재를 공급하면서도 최종 조립과 수출의 과실을 예전만큼 독점하지 못하게 됐다. 미국이 중국을 세계 공급망에서 완전히 밀어내진 못했지만, 중국에 돌아가던 몫을 쪼개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최근 통계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중국이 미국 시장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 소비시장을 가진 나라다. 결국 중국은 미국이 정한 규칙과 장벽, 원산지 기준, 보조금 규율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은 중국산을 당장 대체하지 못하더라도 동남아와 멕시코, 인도 등으로 조달처를 분산할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선택지가 넓어지는 쪽은 미국이고, 더 복잡한 생산과 물류, 투자 부담을 떠안는 쪽은 중국이다. 무역전쟁이 장기화할수록 미국보다 중국의 피로도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미국의 압박은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초기에는 중국 본토에서 미국으로 직접 들어오는 상품에 관세를 매기는 방식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제3국을 통한 우회 생산과 보조금 문제까지 겨냥하고 있다. 표면적인 원산지보다 실질적인 공급망과 부가가치의 출처를 더 엄격하게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이 당장 우회로를 찾았다는 사실만으로 미국의 대중 견제 전략에 낙제점을 매기기 어려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