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의 루비빛 체리와 시장통 소매치기

[지구촌 사람들과 추억을 먹다] (7)

취재를 위한 여행과 사적인 이유에서 선택한 여행 모두가 마찬가지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곳을 떠돈다는 건 새로운 사람과 음식을 마주하는 일에 다름없다. 지난 30여 년. 아시아와 중동, 유럽과 오세아니아를 여행하며 기억에 남을 몇몇 사람을 만났고, 독특한 요리를 맛봤다. 그 여정을 더듬어 <지구촌 사람들과 추억을 먹다> 연재를 이어가고자 한다. /편집자주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의 황금빛 조형물. 소피아의 첫 인상은 ‘몹시 낡았다’였지만, 눈에 익을수록 주황색 기와를 올린 주택들이 근사하게 느껴졌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을 밤늦게 출발한 낡은 기차는 연착을 거듭하며 14시간을 달렸다. 선로 위를 운행하는 기차 특유의 덜컹거림 탓에 침대칸 2층에서 잠들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튀르키예 국경을 넘을 때, 목적지인 불가리아 국경에 도착했을 때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지친 승객들이 만들어낸 긴 줄 끝에 서서 오랜 시간 출국과 입국심사를 거쳐야 했다.


뿐인가. 기차 안에선 푸른 눈동자를 가진 불가리아 세관 직원에게 여권 검사까지 받았다. ‘사회주의의 향기’가 아직 채 사라지지 않은 나라답게 공무원의 경직된 태도와 권위적인 몸짓이 눈에 거슬렸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나는 불가리아 정부의 초대를 받은 국빈(國賓)이 아닌 필부필부(匹夫匹婦)이며, 가난한 배낭여행자일 뿐인데. 별수 없이 검문엔 고분고분 응해야지.


낯선 나라에서 받은 첫인상이 좋지 못하면 그 기분이 오래 가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선입견이나 편견은 가지지 않기로 했다.


도착 예정 시간을 한참 넘겨 해가 중천에 올랐을 무렵에야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 도착했다.


기차 안에서 본 풍광도 그랬고, 역 주변 모습 또한 ‘몹시 낡았다’고 느껴졌다. 여타의 유럽 국가와는 조금 달랐다. 다만, 주황색 기와를 올린 집들은 고풍스러워 보여 근사했다.


적지 않은 한국 사람들이 ‘불가리아는 요구르트가 맛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 역시 그랬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TV 상업광고의 파워는 엄청난 것이니까.


그러나 웬걸. 하늘을 향해 직각으로 뻗어나간 거대한 관공서가 줄줄이 늘어선 소피아 시내 식당에서 맛본 염소젖을 발효시킨 불가리아 요구르트는 기대를 배반했다. 너무 짜고, 과도하게 시큼했던 것.

소피아 시내를 오가는 노면전차 트램.

소피아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트램(tram)에서 내려 터덜터덜 잘 곳을 찾아다녔다. 예약이 익숙한 MZ세대와 달리 X세대인 나는 지금도 숙소나 식당 예약에 서툴다. 귀찮기도 하거니와 ‘이 넓은 도시에 나 하나 머리 누일 곳 없겠냐’는 대책 없는 낙관이 몸에 밴 탓이겠지.


어쨌건 커다란 방에서 10명쯤이 각자에게 배정된 매트리스 하나를 차지하고 잠드는 값싼 도미토리(dormitory)를 발견해 숙박비 계산을 마쳤다.


프런트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근처에 가볼 만한 좋은 장소가 있느냐?”고 물었다. 비슷한 질문을 하는 여행자가 많은 것인지, 인쇄된 종이 하나를 가져오더니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동양인 관광객이 흥미를 가질 곳들을 알려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경고(?)를 했다. “왼쪽 길을 따라 10분 정도 내려가면 나오는 재래시장엔 가지 않아야 한다. 거기엔 집시(Gypsy)가 많고 소매치기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니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거나, 지레 겁을 먹는 건 바람직한 여행자의 태도가 아닐 것 같았다. 약간의 모험과 서스펜스는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요소라고 믿는다. 이것도 X세대의 특성인가? 자문해보지만 답은 잘 모르겠다.


여행자가 1만 명이라면 여행 스타일도 1만 개다. 인간은 모두 취향과 지향이 다른 존재니까.


내 경우엔 어떤 여행지건 재래시장을 구경하는 게 가장 먼저 하는 일. 그러니, 숙소 직원의 경고를 무시하고 거길 찾아갔다. 집시가 득실거리고, 소매치기들의 본거지라는.

호스텔 직원의 경고를 무시하고 겁없이(?) 찾은 재래시장. 소매치기는커녕 작은 말썽조차 구경하지 못했다.

여기까지 글을 읽은 사람들은 어떤 ‘극적인 사건’을 기대할 수도 있겠다. 실망을 시켜서 미안한데, 사소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불가리아 소피아의 재래시장은 주름을 만들며 눈으로 웃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맛보라”며 수박과 과자를 손님에게 건네는 더없이 평화로운 모습. 그랬다. 멱살 잡으며 싸울 소매치기는 결국 만나지 못했다.


한국 돈 2000원가량을 주고 인심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 상인에게 체리를 샀다. 한 주먹을 덤으로 받았다. 체리의 빛깔이 “붉은 보석 중 가장 아름답다”는 루비처럼 고왔다.


새빨간 체리 하나를 입에 넣었다. 그때까지 먹어본 체리 중 가장 달콤했다. 바로 그 순간엔 긴 기차 여행의 피로도, 불친절한 세관 직원도, 기대를 배반한 요구르트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벌써 십수 년 전 기억이지만, 앞으로도 불가리아를 떠올릴 때면 가장 먼저 루비빛 체리와 ‘소매치기는 없는’ 정겨운 재래시장이 가장 먼저 그려질 듯하다.

루비처럼 새빨갛고 다디달던 체리. 불가리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다. /언스플래쉬


[필자 소개] 홍성식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고교 시절.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라는 교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김지하와 이성부의 시를 읽으며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드나들었다. 그 기질이 지금도 여전해 아직도 스스로를 ‘보편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착각하며 산다. 노동일보와 오마이뉴스를 거쳐 현재는 경북매일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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