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시행 앞둔 '여성폭력 사건보도 권고기준'·실효성 강화 논의

18일 '여성폭력 사건보도 권고기준 포럼' 개최
지난해 12월 '여성폭력방지기본법' 개정안 통과로 근거 마련

수많은 보도 가이드라인이 존재하는 가운데 성평등가족부가 준비하고 있는 ‘여성폭력 사건보도 권고기준’은 언론 현장에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까.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여성폭력 사건보도 권고기준 포럼’에선 제정을 앞두고 있는 해당 권고기준이 어떻게 실효성을 강화할 수 있는지, 어떤 내용이 반영되면 좋을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앞서 지난해 12월 ‘여성폭력방지기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번 권고기준 수립이 법적 의무가 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성평등부 장관은 여성폭력 사건보도로 인한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권고기준을 수립하고 그 이행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에 따라 성평등부는 오는 7월1일 법안 시행을 앞두고 한국기자협회, (사)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와 함께 권고기준 초안을 마련했고, 이날 포럼에서 현장 의견을 수렴했다.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성평등가족부·한국기자협회 주최로 ‘여성폭력 사건보도 권고기준 포럼’이 열린 가운데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강아영 기자

포럼에선 여성폭력 사건보도 권고기준의 초안이 공개됐다. 권고기준 마련 연구를 수행한 이자연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노무사는 “오늘날 사건보도는 기사 한 건의 게재로 종료되지 않고 검색되고, 재유통되며, 댓글을 통해 확산되고, 자극적인 제목과 키워드를 통해 반복적으로 소비된다”며 “이러한 환경에선 보도 이후에도 피해가 장기적이고 복합적으로 지속될 수 있으므로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형식으로 정리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권고기준은 전문과 5대 핵심 원칙, 15개 행동강령으로 이뤄졌다. 구체적으로 △인권에 기반한 책임 있는 보도의 원칙 △피해자 보호 및 2차 피해 방지 최우선의 원칙 △선정적·자극적 보도 금지의 원칙 △정보의 정확성 확인 및 신속한 사후조치의 원칙 △디지털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관리 책임 준수의 원칙이 담겼다. 여기에 취재 시, 기사 작성 및 보도 시, 보도 이후 등 단계별 점검사항과 잘못된 표현 및 용어 바로잡기를 수록해 실천형 기준이 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자연 노무사는 “여성폭력 사건보도는 사건의 전달 자체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구조적 인권 침해를 다루는 보도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며 “피해자 보호와 2차 피해 방지는 모든 판단의 출발점이 돼야 하고, 선정성과 자극성은 엄격히 경계돼야 하며 정확한 검증과 신속한 사후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또한 디지털 환경에서의 댓글, 검색, 과거 기사, 잊힐 권리까지 포괄하는 관리 책임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편집국 내 젠더데스크 같은 보직자 신설하도록 권고해야"

이날 포럼에선 권고기준 초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도 공유됐다. 한희정 국민대 교양대 교수는 성폭력이 아니라 여성폭력 사건보도인 만큼 그 범위를 더욱 넓히자는 제안을 내놨다. 한희정 교수는 “기존의 관련 보도 가이드라인이 ‘성폭력’ 사건보도에 국한됐는데, 개정안에 따르면 권고기준이 ‘여성폭력’ 사건보도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관련법에 따르면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엔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성희롱, 지속적 괴롭힘 행위와 그 밖에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 등이 포함된다. 현재의 권고기준에선 가정폭력 보도 관련해 보도의 지향점 또는 지양점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가정폭력 사건보도의 사례도 포함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토론에선 권고기준 적용대상의 범위 역시 넓혀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이민주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반차별팀 활동가는 “기사나 뉴스처럼 사건보도를 주요 콘텐츠로 삼지 않더라도 시사, 다큐멘터리, 연예·예능, 선거방송 등 젠더폭력 사건을 다루거나 언급하는 분야는 많다”며 “그러나 이들 영역의 종사자에게는 보도기준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언론사와 계열사 전반에서 권고기준에 대한 교육과 환류가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도 “언론사는 다양하다”며 “발행부수 및 규모, 여성폭력 보도의 양적 차이, 보도뿐 아니라 연예 분야에서 여성폭력을 다루는 언론사, 지면뿐 아니라 유튜브 영상 등으로 가공하고 유통하는 언론사까지 천차만별일 것이다. 다양한 언론사가 이 자리에 초청돼 더 힘 있게 준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강희 경인일보 논설위원 역시 “언론사에서 뉴스를 제작하고 보도하지만 그 이후 댓글이나 검색, 그리고 과거 기사 관리 책임까지 유통 과정에서의 책임은 어떻게 확장할 것인지 책임 소재를 넓혀야 될 것 같다”며 “어디까지나 권고기준이기 때문에 실효성이 있을지도 계속 지켜봐야 한다. 뉴스 제작이 분업화되면서 책임이 분산되고 있는데, 개별 기자가 아니라 조직에서 구조적으로 책임을 지는 시스템도 확대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성평등가족부·한국기자협회 주최로 ‘여성폭력 사건보도 권고기준 포럼’이 열렸다. /강아영 기자

언론 현장의 중요성에 대해선 이날 많은 토론자들이 공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장인 김지경 MBC 기자는 “권고기준을 보고 동의하지 않을 언론인은 한 분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보도는 매 순간 내부에서 치열한 토론을 거쳐 결정되는 것이지, 어떤 하나의 준칙으로 현장에서 판단되지 않는다. 그래서 권고기준은 기준점을 제시할 뿐 최종 결정은 현장의 몫이고, 정부의 지원 방향도 언론사 내부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남지원 경향신문 젠더데스크 겸 플랫팀장도 “속보 경쟁과 트래픽 압박이 상존하는 보도 현장에서 이런 수많은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일일이 점검하거나 숙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편집국 내 의사결정체계에서 권고기준을 실제로 기사에 적용할 수 있는 젠더데스크 같은 보직자의 존재다. 권고기준을 적용할 담당자를 언론사 내에 지정하거나 신설하도록 권고하는 항목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자협회 부회장인 김은지 시사IN 정치이슈팀장 역시 “여성폭력 사건보도의 한계는 기자 개인의 감수성 부족 문제가 아니라 뉴스룸의 의사결정 구조와 연결돼 있다”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더 많은 여성 데스크가 필요하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이 병행될 때 여성폭력 사건보도 역시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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