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여성혐오' 위협받는 기자들… "홀로 싸우게 해선 안돼"

한국여성기자협회 '위협받는 기자들 어떻게 지킬 것인가' 포럼 개최
스토킹·성폭력 및 온라인 공격 일상화된 시대 '구조적 연대' 필요성

24년차 여성 기자가 일면식도 없는 남성으로부터 6년간 스토킹 피해를 당했다. 가해자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과 블로그, 일베 게시판, 피해자가 쓴 온라인 기사 댓글란 등에 성적 모욕과 허위 내용이 담긴 게시물을 반복해서 올렸다. 처음엔 게시물만 지우면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이번엔 협박이 시작됐다. 심지어 직장 동료들에게까지 편지를 보내며 범행을 이어갔다.

결국 신고했고, 나머지는 국가가 알아서 해주리라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경찰과 검찰이 수사와 재판을 통해 가해자를 엄히 단죄하고 피해자를 도울 거라는 믿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피해자는 보호되는 게 아니라 ‘배제’됐다. 형사 재판의 당사자가 아니라며 국가가 만든 ‘시스템’에서 배제되고 소외됐지만, 피해 사실을 모으고 증명하고 가해자의 양형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은 오롯이 피해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사건을 겪는 내내 국가로부터 가해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국가랑 계속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최근 르포르타주 <탁월한 피해자>로 엮어낸 곽아람 조선일보 기자는 17일 한국여성기자협회가 주최한 ‘위협받는 기자들 어떻게 지킬 것인가’ 포럼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형사사법시스템의 부조리를 고발함으로써 자신을 지키고, 비슷한 경험을 겪고 있거나 언젠가 하게 될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며 한 말이다.

“연예인 아닌데 스토킹 피해 이례적? 주변 동료엔 많아”

한국여성기자협회가 1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개최한 ‘위협받는 기자들 어떻게 지킬 것인가’ 포럼에서 곽아람 조선일보 기자가 발표하고 있다. /김고은 기자

범죄 피해자로서 6년째 여섯 번의 형사고소와 한 번의 민사소송을 이어오고 곽 기자의 ‘투쟁’은 보편적이지 않지만, 그가 겪은 범죄 피해 자체는 아주 이례적이지 않다. 곽 기자는 말했다. “제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이 그러더라. 연예인이 아닌데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스토킹 당하는 피해자를 본 건 처음이라고. 그런데 이번에 책을 내고 나서 주변 동료들 얘기를 들어보면 스토킹을 당한 분들이 너무 많은 거다.”

곽 기자는 “연예인을 제외하고, 이 사회의 어느 여성보다도 더 스토킹 및 디지털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여성들이 기자들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쓴 기사, 회사 지시로 진행한 팟캐스트 등 “단지 업무에 충실했을 뿐인데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표적이 되어” 범죄 피해를 겪었다. 이렇게 많은 여성 기자가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혹은 취재원에게, 아니면 직장 내에서 스토킹, 성폭력, 괴롭힘 등을 당한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올해 유엔여성기구(UN Women)가 발표한 국제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여성 기자와 미디어 종사자의 약 73%가 취재나 보도 활동 중 온라인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상당수는 그 폭력이 온라인에서 끝나지 않고 오프라인 괴롭힘과 위협으로 이어졌다고 응답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은 “여성 기자를 향한 폭력은 더 이상 댓글 몇 개나 악성 메시지 몇 통으로 설명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취재 환경 전체를 위축시키고 공론장의 구조를 바꾸는 문제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AI 시대 변곡점…‘혐오의 무기화’ 비용을 제로로 만들어”

과거 온라인 공격은 주로 댓글란에서 이뤄졌다. 내용도 ‘기사 똑바로 써라’, ‘못생겼다’ 같이 1차원적 모욕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대체로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런 온라인 폭력이 인공지능(AI) 시대에 들어서며 변곡점을 맞았다. AI를 활용해 손쉽게 딥페이크 이미지·영상 등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뉴스를 진행하는 정장 차림의 여성 앵커 옷을 벗겨버린다거나(누디피케이션). 합성 성폭력 이미지를 제작·유포해 상대를 조롱거리로 만드는 일 등이 너무나 손쉬워졌다. 허 조사관은 “생성형 AI의 도입은 혐오를 무기화하는 비용을 제로(0)로 만들었으며, 여성 언론인을 향한 성착취적 이미지 조작을 전례 없는 규모와 속도로 양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공격을 할 때도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 그냥 발화자를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리면 너무 간단한 거다. 여성 언론인이 팩트를 전달하려고 할 때 딥페이크나 합성 이미지 같은 것들을 통해서 훼손을 시키는 거다.”

허 조사관은 영국 출신 철학자 미란다 프리커의 ‘증언 부정의(Testimonial Injustice)’ 개념으로 이 현상을 설명했다. 발화자에 대한 반복된 공격은 기존의 권력관계나 혐오와 결합해 발화자의 신뢰성을 구조적으로 붕괴시킨다는 것이다.

증언 부정의가 초래하는 해악은 개인의 고통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피해자는 “신뢰할 수 있는 지식 전달자”로서 지위를 박탈당하며, 자기검열이 강하게 작동한다. 유엔여성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폭력으로 인해 여성 언론인이 온라인 자기검열을 한다는 응답 비율이 2020년 30%에서 2025년 45.3%로 5년 만에 50% 증가했다. ‘이걸 취재해도 될까, 괜히 했다가 또 모욕만 당하면 어쩌지, 그냥 남이 하게 두자. 내가 뭘 굳이’ 이런 식으로 피하게 되는 것이다. 허 조사관은 “젠더폭력의 목적은 피해자를 잠재우는 데 있다”고 꼬집었다.

젠더폭력, 피해자를 침묵시키고 잠재우다

다음 단계에선 ‘인식론적 착취(Epistemic Exploitation)’가 이뤄진다. 미국의 철학자 노라 베렌스타인이 제시한 이 개념은 ‘권력을 가진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게 자신들이 겪는 차별과 억압을 지속적으로 설명하도록 요구하는 현상’을 뜻한다. 예컨대 여성들이 밤에 골목길을 걷거나 택시를 탈 때 느끼는 일상적인 불안과 두려움, 공포를 남성들은 이해하지 못하거나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거듭 설명하고 호소하면 ‘여자들은 망상이 심하다’, ‘지가 예쁜 줄 안다’고 반응하기도 한다. 곽 기자도 스토킹 피해를 호소했을 때 “인기 많아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직업별로 분류한 AI 및 이미지 기반 온라인 폭력 징후 조사 결과. 가장 짙은 주황색이 여성 저널리스트와 미디어 종사자 응답이다. UN Women 등이 발행한 보고서 'TIPPING POINT: ONLINE VIOLENCE IMPACTS, MANIFESTATIONS AND REDRESS IN THE AI AGE' 중.

무엇이 왜 문제인지에 관한 반복적인 설명 요구 속에 발화자의 에너지는 소진된다. 결국 많은 발화자가 택하게 되는 것이 ‘침묵’이다. 허 조사관은 “특정 발화자의 위축은 특정 의제의 상실로 직결된다”면서 “이것은 민주주의의 치명적인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주요 국가에서 “여성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폭력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위험이라는 인식 하에, 정부와 언론사가 공동으로 대응하는 보호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이유다. 더 이상 ‘기자니까’ 감당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게 됐다는 거다.

예컨대 호주 ABC 방송엔 기자와 뉴스룸을 위한 온라인 안전 가이드라인이 있다. 예방-내부 대응-외부 연계가 3대 축인데, 기자가 매우 높은 위험에 노출될 경우 ABC 연락 담당자가 ‘소셜 미디어 웰빙 어드바이저’에게 추가 지원을 요청하는 절차가 마련돼 있다. 이 어드바이저는 불법촬영물 등 악성 댓글을 삭제하고, 플랫폼과도 직접 소통 및 삭제 요구를 한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규제 기관이 나선다.

영국 Reach plc는 2021년 ‘온라인 안전 에디터’ 제도를 도입하며 기자를 온라인 폭력으로부터 고립시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역시 예방-연대-연대를 3대 축으로 하며 기자 개인이 아닌 언론사 차원에서 플랫폼에 개입하고 법적 대응 하는 게 핵심이다.

기자니까 감당해라?…“구조적 연대로 젠더폭력에 맞서야”

이런 사례를 근거로 허 조사관은 국내에도 “뉴스룸 내부에 기자가 공격의 대상이 되었을 때 홀로 고립되지 않도록 디지털 안전 에디터와 같은 전담 인력을 신설하고 사내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필요하면 입법 등을 통한 지원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도 했다.

곽아람 기자도 “기자들이 취재하면서 입은 피해를 기자 개인의 일이 아니라 회사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첫째 사내 신고 가이드라인 마련, 둘째 사내 2차 가해 금지 가이드라인 마련, 셋째 2차 가해 시 조사하고 인사평가에 반영하는 체계 마련, 넷째 법무팀 자문 및 변호 실적 공개 등을 제안했다.

허 조사관은 “학대 발생 시, 기자가 플랫폼의 악플과 직접 씨름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면서 “젠더폭력에 맞서는 단 하나의 무기는 ‘개인의 멘탈’이 아닌 ‘구조적 연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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