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할수록 스트레스"… 무력감 느끼는 SBS 기자들

SBS 구성원 223명 기명 성명… 수뇌부 불통 등 원인

“SBS 보도본부의 제1원칙은 ‘사고 내지 말자’입니다. 사고의 가능성을 0으로 만들기 위해 발제를 죽이고, 방송 직전까지 기사를 붙잡고 있거든요. 부끄럽지만 전혀 저널리즘을 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SBS A 기자는 최근 내부 구성원들의 불만이 폭발한 데 대해 이같이 말했다.

SBS 취재기자 118명은 6월22일 보도 경쟁력 회복을 요구하는 기명 성명을 냈다. 보직을 맡고 있지 않은 20년차 이하 중 95%가 넘는 기자들이 이름을 올렸고, 이후 일주일간 영상취재기자, 영상편집기자 등이 추가되며 총 223명이 이번 성명에 동참하게 됐다. 사진은 서울 양천구 목동 SBS 사옥. /강아영 기자

6월22일, SBS 취재기자 118명은 보도 경쟁력 회복을 요구하는 기명 성명을 냈다. “하루 종일 나온 소식의 재탕, 따라가기 급급한 한발 늦은 보도, 관점은 쏙 뺀 하나마나한 뉴스” 등으로 더는 “SBS 뉴스를 볼 이유가 없다”며 인적 쇄신과 비전 제시를 요구하는 성명이었다. 보직을 맡고 있지 않은 20년차 이하 중 95%가 넘는 기자들이 이름을 올렸고, 이후 일주일간 기자 1명과 영상취재기자 43명, 영상편집기자 37명, 영상디자인팀 직원 24명이 추가되며 총 223명이 이번 성명에 동참하게 됐다.


기자들 말을 종합하면 보도본부 수뇌부의 불통과 무능, 그로 인한 동료들의 이탈이 이번 사태의 불씨가 됐다. A 기자는 “발제를 하면 더 키워주는 게 아니라 취재가 충분하지 않다, 경솔하다는 식으로 기자를 깬다”며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데스크와 싸우는 구조가 됐다. 그게 몇 년 동안 반복되니 기자들도 ‘발제를 하면 오히려 경솔한 사람이 되네, 부장이랑 싸우네, 그럼 안 해야지’ 이런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또 “몸을 너무 사리니 데스킹 시간이 늦어지는데, 기자는 시간 내 리포트를 대야 하니 관련 부서랑 싸우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그런데 데스크는 그런 문제는 외면하고 사소한 실수만 하면 다음날 경위서를 요구한다. 그런 일들을 겪으며 기자들이 자포자기, 무력감을 느끼고 열심히 싸웠던 기자들이 퇴사하는 상황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끝까지 싸웠던 동료의 퇴사는 이번 사태의 기폭제가 됐다. ‘이대로는 큰일 난다’는 위기감 아래 6월11일과 16일 두 차례에 걸쳐 확대공정방송실천위원회 회의가 열렸고, 60여명의 기자들이 모여 SBS 보도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회의에선 ‘보도국장이 제목부터 싱크까지 이거 한 줄 넣어라 빼라, 메인 뉴스를 자기 SNS 관리하듯 하고 있다’, ‘기자가 뭔가 취재해서 넣는다고 하면 데스킹 과정에서 다 빠지고 연합뉴스에서 나왔던 그대로 기사가 나간다’ 등의 지적이 잇따랐다.


B 기자는 “오전 편집회의에서 뉴스 방향이나 제목 같은 구성 요소가 다 결정돼 내려오는데, 현장에서 그 내용과 조금만 다른 취재 결과를 올려도 계속 아니라 하고 다시 확인해 보라 한다”며 “계속 연합뉴스를 확인하고 기계적 양비론을 추구한다. 지난해 탄핵과 대선 그리고 올해 지선까지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들이 많았는데 분명히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에 대해서도 기계적 균형을 맞추고, 정부에 불편한 보도를 하지 않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SBS ‘8뉴스’의 시청률(닐슨코리아, 수도권 가구 기준)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4%대를 유지했으나 이후 하락해 올해 기준 평균 시청률이 3%대 중반을 기록하고 있다. 광고주들이 눈여겨보는 지표인 2049 시청률에서도 SBS는 오랜 기간 유지해왔던 1위 자리를 지난해 MBC에 내줬다. 특히 올해의 경우 2월과 3월을 제외하고 월별 2049 시청률이 0%대로 추락한 상황이다. B 기자는 “유튜브 라이브 동시접속자 수만 봐도 처참하다. 다른 방송사들과 비교가 된다”며 “특종이 나와도 예전에는 관점을 담고, 비중을 늘리고 어떻게든 영향력을 키워나가기 위해 노력했다면 요즘엔 그날로 끝이다. 다음 날부턴 다시 무색무취의 보도로 돌아가는데, 이게 진짜 기운이 빠진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SBS 보도 경쟁력 하락의 시작점을 2020년 전후로 봤다. 특히 2023년 말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 신청 이후 SBS 대주주인 TY홀딩스가 계열사를 돕기 위해 나서면서 보도본부가 더욱 위축됐다고 다수 기자들은 말했다. 정권 눈치를 보기 위해 ‘절제와 겸손’의 저널리즘을 강조하고, 노사가 합의한 보도준칙 외 ‘저널리즘 준칙’을 별도로 내며 기자들 야성을 지우고 무사고를 지향했다는 지적이다.


C 기자는 “과거 윤세영 회장이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지 말라거나 좀 도와줘야 된다고 말했다가 논란이 돼서 SBS 회장직을 사임한 일이 있었다”며 “그 트라우마 때문인지 대주주가 보도본부에 뭘 직접적으로 지시하진 않는다. 다만 암암리에 정부나 금융 관계자와 연결해 달라는 연락들이 있었고, 구성원들도 그런 상황에서 날선 기사를 쓰기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D 기자도 “대주주와의 연결고리는 낚싯줄처럼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며 “중요한 의사결정이 있을 때마다 SBS 수뇌부들이 여의도를 바라본다는 건 많이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성명이 나온 날 사내게시판엔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명의의 입장문이 올라왔다. “여러 방식으로 소통하며 더 좋은 뉴스를 만들고자 노력해 왔으나 그 사실이 모든 구성원들에게 온전히 이해되지 않은 것 같아 매우 아쉽고 안타깝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그 또한 간부들의 불찰이고 감당해야 할 몫”이라며 소통을 통한 다양한 의견 수렴, 회의 운영 방식 및 뉴스 형식 전면 개편, 인력 운영 쇄신 등을 약속했다. 기자협회보는 별도 입장을 듣기 위해 김우식 보도국장에게 수차례 연락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양윤석 보도본부장은 “기자협회 쪽에 간담회를 하자고 제안해 놓은 상태”라며 “제 입장은 간담회를 통해 기자들에게 직접 밝히겠다”고 말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