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그룹 일가의 법적 분쟁을 다룬 기사가 뉴스룸국장 지시로 온라인 출고 약 6시간만에 삭제되며 조직 내외에서 비판이 일었던 한국일보가 18일 해당 기사를 복구했다. 기사가 삭제된 지 3주만이자,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지부 산하 민주언론실천위원회가 성명을 통해 국장의 사과와 기사 복구 등을 요구한 지 2주만이다.
한국일보는 이날 오후 1시 <[단독] ‘지분 압박’일까 ‘결별 통보’일까…효성 형제 녹취·편지 봤더니> 기사를 되살렸다. 기사는 조현준 효성 회장에 대한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의 강요미수 혐의 재판과 관련해 동생이자 피고인 조 전 부사장 측이 법원에 제출한 녹취록을 입수해 보도한 것이다. 복구한 기사 말미엔 삭제 시점과 복구 배경, 독자에 대한 사과 메시지도 덧붙었다.
한국일보는 “①기사 삭제 가이드라인에 맞지 않고 ②삭제 이유와 절차가 통상적 게이트키핑으로 보기 어렵고 ③삭제 전 담당 부서, 작성 기자와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편집제작평의회 심의·의결에 따라 9월18일 기사를 복구한다”며 “향후 출고된 기사의 수정·삭제에는 신중한 판단과 충분한 내부 논의가 필요하다는 원칙도 재확인했다”고 했다.
이어 “독자 여러분께 충분한 설명 없이 기사를 삭제해 혼란을 드린 점 사과드린다”며 “한국일보는 앞으로 기사 수정·삭제의 기준과 절차를 보완하고, 관련 내용을 투명하게 알리겠다. 충실하고 책임 있는 보도로 신뢰에 보답하겠다”고 부연했다.
해당 기사는 8월28일 오전 4시30분 온라인 출고됐다가 당일 오전 10시12분 삭제돼 파문이 일었다. 강철원 뉴스룸국장이 담당 데스크 등에게 삭제방침을 통보한 뒤 직접 콘텐츠 유통 부서에 삭제를 지시했고 취재기자의 입장을 듣기 전 ‘몰고’가 결정된 것을 두고 '삭제 판단'과 '절차'의 적절성에 대해 문제제기가 나왔다. 이날 효성 임원들이 한국일보를 방문한 뒤 기사 삭제가 이뤄져 경영적 판단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강 국장은 당시(5일) 사내 게시글을 통해 “삭제 과정에서 취재기자 및 데스크와 충분히 소통하지 못한 점은 유감”이라면서도 기사 삭제는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그는 “법조기자를 오랫동안 해온 입장에서 보면, 특정 취재원에 경도된 기사, 반복적으로 피고인을 두둔하는 기사, 부당하게 재판에 영향을 주려는 기사, 균형감을 상실한 기사라는 게 뉴스룸국장이 내린 결론”이라며 “전날 기사 출고 자체를 막았어야 하는데,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것이 국장의 가장 큰 불찰”이라고 했다.
또 당일 관련 재판이 예정된 상황에서 해당 보도가 영향을 끼칠 소지가 있었다며 “피고인 조현문의 변호인 중에는 한국일보 자문 변호사도 포함돼 있어 그런 오해를 증폭시킬 수 있는 상황”이고 “뉴스룸국장 입장에선 그런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 효성 측 방문 영향에 대해선 “삭제 과정에서 누구와도 상의한 바가 없다”고 했다.
이후 기사 복구 결정은 16일 열린 한국일보 편집제작평의회에서 이뤄졌다. 이날 평의회 위원들은 기사에 대한 판단을 떠나 이미 출고된 기사를 삭제한 이유와 절차가 통상적이지 않고, 효성 압박에 의한 기사 삭제로 보일 가능성이 크다며 기사 복구를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기사 복구 시 수정여부는 담당 데스크인 사회부장이 국장단, 취재기자와 논의해 판단하고, 해당 기사에 삭제와 복구 과정에 대한 해명·사과도 포함하기로 총의를 모았다. 기사 수정·삭제 가이드라인도 개정하기로 했다.
평의회는 부장급 이상 편집간부와 차장급 이하 편집국원 동수로 구성(현재 총 10명)돼 한국일보 뉴스 편집의 기본원칙인 편집강령 관련 사안을 토의·관장하는 기구다. 편집강령이나 뉴스 평가에 관한 사항, 편집·제작에 대한 의견수렴, 발행인 또는 편집국원의 제안 사항, 편집국장 임면 절차 등을 다루며, 편집국장은 평의회 합의내용을 뉴스제작 및 편집국 운영에 반영하게 돼 있다.
이와 관련해 강 국장은 17일 뉴스룸국 회의에서 ‘평의회 결정을 받아들인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내부 문제제기와 언론보도가 잇따른 후 강 국장은 10일 경영진에 사표를 제출했었지만 현재 뜻을 바꾼 것으로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