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비정규직] "정규직에겐 천국이지만 우리는…"

임금 열악·업무 과다·장래 불안…'상대적 박탈감' 심각

방송사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상대적 박탈감’이다. 이들은 열악한 임금에 기인하는 어려운 생활여건도 문제지만 정규직과의 임금 및 대우의 차이에서 오는 상실감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말한다.

지난달 16일 MBC에서 해고된 I씨는 “술 담배를 전혀 안하고 살아왔는데 2년전 여기 와서 술 담배를 시작했다. 방송사는 정규직에게는 천국이지만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눈 버리고 귀 버리는 곳”이라며 “다시는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고 주변에 누가 온다고 하면 말리고 싶다”고 말했다.

지상파 방송사의 정규직 임금수준은 국내 최고수준이지만 방송사 비정규직은 전체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을 넘지 않는다. 바우처인 AD, FD, 작가, 스크립터와 여사무보조 등의 월급은 대부분 1백만원 미만이다. 계약직 PD의 대우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정규직의 30∼40% 수준에 불과하다. 촬영보조의 임금은 1백만원 안팎이고, 안전관리부는 약간 나은 편. MBC 안전관리부의 경우 C용역업체 소속은 1백15만원, E용역업체 소속은 1백10만원 가량이다. 운전직의 경우 임금이 가장 열악한 곳은 KBS. SBS와 MBC가 시간외근로와 휴일수당을 포함해 각각 월 평균 1백20만, 1백35만원 정도지만, KBS의 경우 기본급이 최저생계비를 약간 웃도는 60여만원. 월 60시간 이상 시간외근무를 해야만 1백만원이 넘게 된다. 2004년 현재 최저생계비는 시급 2천5백10원에 월 기본급 56만7천2백60원으로 규정돼 있다.

문제는 도급과 파견직의 경우 하청과 원청과의 계약관계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실제로 용역회사에서 어느 정도의 알선료를 떼는지 전혀 모른다는 점이다. 대개 매월 20∼50% 정도 떼는 것으로 추산되며 기본급뿐만 아니라 시간외수당, 식대, 교통비 등의 간접비에서조차 일정액을 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일부 계약직을 제외한 비정규직의 경우 임금이 아예 오르지 않거나 상승폭이 미비한 수준이다.

이와 관련 중학생 자녀를 둔 KBS 비정규직 H씨는 “기본급으로 생계유지가 안되기 때문에 야간이나 휴일근무를 서로 하려고 경쟁하고 있을 정도”라며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건 생각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장래가 불투명하다는 점도 열악한 임금 못지않은 불안요인이다. 업무과다에 비해 비전이 없다는 이유로 그만두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려운 경제사정 때문에 대학을 자퇴하고 MBC안전관리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20대의 C씨는 “매년 재계약을 하고 있지만 회사에 밉보이면 계약이 연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업무관련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며 “장기근무를 한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기 때문에 미래가 늘 불안하다”고 말했다.

한편 방송사들이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비중있게 다루면서도 정작 방송사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는 방송사의 ‘이중성’에 대한 지적으로 때로 비정규직이 비정규직의 문제점을 취재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는 것. 실제로 3월 30일 방영된 PD수첩은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면서 “스스로를 지킬 조직과 사회안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법으로부터도 외면당한 그들은 생존의 벼랑끝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며 “비정규직 문제 해결 없이 더 이상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기대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프로그램에 제시된 사례 중 방송사 비정규직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이와 관련 KBS차량부에서 근무하는 L씨는 “노동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지금과 같은 처우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비정규직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고 또 아프게 비판하고 있는 방송사가 오히려 자사의 비정규직들을 착취한다는 게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조규장 기자 natasha@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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