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 너머] (245) 딜링룸 경쟁
모니터 속 숫자와 그래프로 가득한 서울의 한 은행 딜링룸, 오후 3시30분 종가 시간이 되면 그날의 경제 뉴스에 따라 이곳은 사진기자들의 셔터 소리와 부산한 발걸음 소리로 가득 채워진다. 이 은행은 과거부터 원달러 환율이나 코스피 지수 등 그날의 뉴스 사진에 맞는 스케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사진영상 기자들에게 딜링룸을 개방해 왔다. 은행 직원이 각종 지수가 표시되고 있는 전광판 앞을 지나가면 기자들의 셔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코스피 지수가 올라가는 긍정적인 뉴스에 맞는 사진이 필요하면 직원의 웃는 모습을 한참 동안 기다리곤 했
[뷰파인더 너머] (244) 실수할 용기
실수할 것 같아서 하려던 걸 제대로 못 하지 말고, 차라리 과감히 실수해 버려. 지난달 전국에서 단 하나뿐인 주니어 여자야구단을 만나러 갔던 날 경기장에서 우연히 들은 말입니다. 야구가 좋아 모인 소녀들이지만 올해 첫 경기를 앞두고 어딘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평소라면 자신 있게 했을 플레이도, 실수를 걱정하며 스스로를 작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때 감독이 건넨 한마디였습니다. 잠깐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쉽게 잊히지 않았습니다.그 말을 들은 뒤 선수들의 움직임은 달라졌습니다. 공을 던지고, 치고, 달리는 동작이 눈에 띄
[뷰파인더 너머] (243) 다시 4월, 노란 리본 앞에서
기자의 일은 좋든 싫든 현장으로 향하는 데서 시작된다. 특히 여러 분야를 오가는 사진기자는 뉴스 장면을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게 된다. 사건의 시작과 끝, 혹은 그사이 흘러가는 시간을 기록한다. 그러다 보면 어떤 현장은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움직인다. 내게 세월호가 그렇다.다시 4월이다. 노란 리본이 걸리는 시간, 그 12번째 봄을 맞는다. 하교 후 생존자 명단을 확인하며 숨죽여 울던 나는 이제 카메라와 펜을 든다. 나의 교복은 옷장 깊숙이 들어갔지만, 유가족의 노란 점퍼는 여전히 거리와 광장에 남아 있다.현장에서 마주한 노란 점퍼
[뷰파인더 너머] (242) 뿌연 하늘, 머뭇거리는 봄
겨울철 공기의 탁함을 계절의 일부처럼 받아들였다. 창문을 닫은 채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난방과 멈춘 공기 속에서 미세먼지는 조용히 쌓이면서 사람들은 그 무게를 익숙하게 견뎌냈다. 다가올 봄과 따뜻한 햇살, 맑은 하늘을 기대하며. 하지만 대한민국 봄의 공기는 다른 방식으로 흐려진다. 황사를 타고 온 먼지들이 멀리서 건너와 하늘을 옅게 덮고, 또렷해야 할 풍경을 천천히 지워버린다. 맑아질 듯하다가도 다시 흐려지는 날들이 이어지며 푸른 하늘에게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마음은 그 차이를 더 크게 느낀다. 겨울에는 참을…
[뷰파인더 너머] (241) 공존
울산 도심이 여명으로 붉게 물들어 가는 시간, 태화강 상공에 검은 물결이 선회한다. 겨울을 나기 위해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떼까마귀다. 빌딩 숲 사이에서 펼쳐지는 수만 마리의 군무는 울산이 단순한 산업도시가 아니라 생태도시임을 증명한다.시민들의 노력으로 맑아진 태화강은 철새가 머무는 휴식처가 되었고 강변을 따라 자리한 십리대숲은 천적을 피해 숨을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다.울산의 하늘은 그렇게 자연과 도시가 공존하는 철새들의 무대가 되었다.그러나 이 경이로운 풍경의 이면에는 또 다른 목소리도 있다. 상가의 간판과 인도, 주차된 차량 위
[뷰파인더 너머] (240) 이탈리아의 반려견 사랑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작은 카페. 잔잔한 음악과 적당히 북적이는 분위기 속에서 맑은 눈동자와 금색 털을 가진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가 견주와 함께 카페 안으로 들어온다. 익숙한 공간인 듯 테이블 아래 공간을 자리 잡고, 견주가 맥주와 피자를 다 먹을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렸다. 밀라노 아르코 델라 파체 인근의 한 슈퍼마켓을 찾은 남성 역시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 장을 보러 나왔다. 반려견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어린 소녀들을 제외하면, 장을 보는 다른 손님들은 반려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이탈리아 식당, 마트, 대중교통에선 반려견이
[뷰파인더 너머] (239) 알록달록한 기대
이른 봄바람이 불던 2월 어느 날, 제주 동쪽 마을의 항구를 걷다 한 아이를 만났습니다. 선착장 주변에서 낚싯대를 들고 서 있던 아이는 집에 있으면 스마트폰만 하게 될 것 같아 바다로 나왔다고 했습니다. 지난 체험학습 때 느꼈던 물고기의 손맛을 다시 만나보고 싶다고도 했습니다.아이의 손에는 디폼블럭을 하나씩 이어 붙여 만든 낚싯대가 들려 있었습니다. 새것을 구할 수 없어 형형색색 블록을 촘촘히 끼워 맞췄습니다. 줄을 감는 작은 휠도 달려 있었습니다. 그날 아이는 그 낚싯대를 처음 바다로 내밀었습니다.단단하지도, 멀리 뻗지도 못했지만
[뷰파인더 너머] (238) 할머니와 나 사이 시간
아이는 자라 어른이 되고, 그사이 어른은 노인이 된다. 어머니는 늦둥이다. 늦둥이의 딸인 내가 커서 성인이 되었을 때, 할머니는 이미 많이 연로해지셨다. 예전과 다르게 꼿꼿하던 허리는 서서히 굽었고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도 잦아졌다. 할머니가 손수 가꾸던 꽃은 하나둘 지고 빈 화분이 늘어갔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당연한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어른이 된 나는 여전히 젊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런데도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건 오직 할머니 때문이다. 나와 할머니가 서 있는 평행선 사이로 세상은 빠르게 변해
[뷰파인더 너머] (237) 계절의 시간표
입춘(立春)은 달력 위에서 가장 먼저 봄을 부르는 날입니다. 오래전부터 한시와 세시 풍속 속에 반복돼 왔듯이, 사람들은 이 무렵 매화가 웃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올해 입춘이었던 4일 서울기상관측소의 관측목 매화는 봉오리를 열지 않았습니다. 가지 끝은 단단히 닫혀 있고, 봄의 기척은 아직 들리지 않습니다. 절기는 분명 봄을 가리키지만, 실제 자연은 한 박자 늦게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이 어긋남은 틀림이라기보다 간극에 가깝습니다. 24절기는 기원전 3세기경 중국 한나라 때 체계화된 태양력 기반의 달력으로 입춘, 곡우, 추분 같은 절기
[뷰파인더 너머] (236) 붉은 말 그리고 AI
나는 사진기자로 일하며 사진은 진실하고 강력한 증거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AI 기술이 등장하면서 과연 사진은 진실한가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지난해 12월, 2026년 붉은 말의 해를 앞두고 기획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제주도의 한 목장을 찾았다. 70여 마리의 말이 솟구치는 해를 배경으로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며 초망원 렌즈 등 장비를 챙겨갔다. 하지만 제주 현장은 짙은 구름으로 해를 볼 수 없었다. 그나마 구름 사이로 햇살이 잠시 비칠 때는 말들이 움직이지 않았다.그렇게 촬영한 수백 장의 사진에는 아쉬움만이 남았다. 문득 AI가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