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 너머] (221) 다른 시간, 두 세계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한 가판대에 두 세계가 공존한다. 위쪽엔 색색의 조화가 빽빽이 꽂혀 있다. 빨간 장미와 분홍 카네이션, 노란 거베라가 화려하게 피어 있지만 손끝에 닿으면 생명 대신 비닐의 감촉이 돌아온다. 인공의 완벽함으로 만든 꽃들은 시들지 않고 계절이 바뀌어도 언제나 같은 빛깔을 유지한다. 그 아래에는 또 다른 시간이 흐른다. 작은 봉
[뷰파인더 너머] (220) 사진 한 장의 기다림이 그립다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이른 아침 인제로 출장을 나선 날이다. 깜박 잊고 챙기지 않은 물건이 있어 차를 다시 돌려 회사로 향한다. 소양강 위로 피어오르고 있는 물안개가 눈에 들어왔다. 얼른 차를 세우고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본다.주변을 산책하던 사람들도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자신만의 앵글로 물안개를 담아낸다. 문득 드는 생각. 사진을 찍어 순
[뷰파인더 너머] (219) 집회의 자유 외치며 언론자유 억압한 '대구퀴어축제'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20일 대구 도심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는 대규모 경찰 병력의 호위를 받으며 진행됐다. 도심 한복판의 차량 통행은 통제됐고 하루 종일 대구 최대 번화가 일대는 극심한 교통 혼잡에 시달렸다. 행렬은 수십 개의 깃발과 함께 도로를 가득 메웠다. 조직위는 수십 년간 이어진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집회의 자
[뷰파인더 너머] (218) 빈자리를 기억하는 법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일면식 없는 이들의 죽음을 기록하며 생긴 공허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때로는 그 현장을 직접 마주하기도 하지만, 뒤늦게 도착한 그곳에서 떠난 이들의 흔적을 찾아보기란 힘들었다. 슬픔이 가시기도 전 누군가는 그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사라진 이들을 기리고자 다시 찾은 그곳에는 이름도,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빈자리는…
[뷰파인더 너머] (217) 빗속에서 마주한 배려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국립중앙박물관을 나서던 순간,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누군가는 준비해 둔 우산을 펼쳤고 허둥지둥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빗속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동선과 표정으로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냈습니다.저 멀리 낯선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세 살 남짓한 아이가 엄마에게 우산을 씌워주겠다며 작은
[뷰파인더 너머] (216) 공간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여행을 가면 관광지보다 주민들이 사는 동네를 둘러보는 편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얼굴 표정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생활하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일본 어느 도시의 공원에 들어서자 공원의 중심에 자리 잡은 큼지막한 물체가 눈에 띄었다. 전형적이지 않은 생김새 때문에 공원을 상징하는 조형물인가 했는데, 가까이 가서…
[뷰파인더 너머] (215) 눈은 어디에나 있었다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이곳은 기록의 한 장면이다. 뉴스 속 반복되는 장면이 되기 전의 찰나. 나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셔터 소리와 낮게 깔린 웅성거림이 공기를 흔들었다. 그리고 건너편 건물 유리창 너머, 수많은 눈이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전현직 대통령의 배우자가 피의자 신분으로 포토라인에 선 건 헌정사상 처음이었다. 김건희 여사는 자신을
[뷰파인더 너머] (214) 태극 바람개비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춘천시가 광복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시청광장에 설치한 태극기 모양이 담긴 바람개비. 이 바람개비를 보고 나도 모르게 입에서 흥얼거려지는 노래.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킨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광복절이 다가오면 부르던 노
[뷰파인더 너머] (213) 여름의 빛과 그림자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작열하는 여름의 폭염은 모든 곳을 덮치지만, 피할 수 있는 그림자는 모든 이에게 같지 않다. 도심의 분수대는 쉼 없이 물을 뿜어내고, 사람들은 그 사이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누린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여름의 풍경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추억은 아니다.대도시의 여름은 풍요롭다. 동네 공원의 분수와 물놀이장
[뷰파인더 너머] (212) 전화기 너머의 표정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까운 이들의 전화를 자주 받는다. 휴대전화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주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보다 깊은 고민과 어려움이 담겨있다.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온전히 그 이야기에 집중한다. 오늘 하루 그가 느꼈을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하며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마음속에서 정리한다. 통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