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를 허하라
나는 맞고 당신은 틀려야 사는 곳은 정치권만이 아니다. 이들의 세(勢)를 알려주는 여론조사 기관들도 마찬가지다. 같은 걸 조사해도 많게는 20%p가까이 벌어지는 탓에 서로가 정답이라며 아웅다웅하고 있다. 막상 정답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오답도, 정답도 모두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정치가 곧 여론조사고, 여론조사는 정치꾼이 되어버렸다.오늘도 조사 결과는 쏟아져 나오고, 불신과 정보를 동시에 배출하는 아이러니를 미디어는 연일 보도한다. 불편한 동거다. 보다 못해 숫자가 아니라 추세를 보라는 지침을 주지만, 심지어는…
가을이 실종됐다고요?
기상전문기자라는 직업 때문일까? 사람들이 날씨 얘기를 하면 귀가 쫑긋해진다. 출근길 버스에서, 점심 먹으러 나가는 직장인들 틈에서 왜 이렇게 추워? 아니면 더워? 비가 자주 와? 미세먼지가 심해? 이런 대화가 자주 들린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 사이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곤 한다. 진짜 그러면 사람들이 놀라겠지?최근에는 10월 중순 갑작스러운 한파가 찾아왔다. 요가 수업을 갔는데 매트 위에 앉은 회원들 사이에 날씨 얘기가 한창이다. 가을 옷을 살 필요가 없다, 트렌치코트를 꺼냈는데 1번 입고 세탁소에 맡기게 생겼다
'플랜 비'는 없다
빠른 속도의 드럼에 맞춰 신디사이저가 깔리기 시작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박자를 타기 시작할 것이다. 테이크 온 미~ 테이크 미 온~이란 후렴구 멜로디를 듣는 순간 아, 이 노래!라고 외치지 않을 이는 없을 것이다. 노르웨이 3인조 밴드 아하가 1985년 선보인 히트곡 테이크 온 미다. 무려 36년 전 노래지만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13억 회에 달한다. 시간이 흘러도 생명력을 잃지 않았음을 숫자가 증명한다.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은 것도 이 노래가 촉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아하의 전성기를 목격하진 못했지만 테이크 온 미라는…
리스크는 개미가, 돈방석은 대주주가… 국내 IPO 씁쓸한 단상
한국의 주식시장이 학대당하고 있다.최근 이원기 PCA자산운용 대표가 한 유튜브 채널에 나와 현 상황에 대해 일침을 놨다. 저금리에 못 견딘 개인들이 증시로 몰려들자 기업, 기관투자자들이 그동안 못했던 숙원 사업들을 풀어내며 주식 공급을 쏟아내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더기 기업공개(IPO)다. IPO는 그동안 최대주주나 일부 기관투자자들만 갖고 있던 회사의 주식을 거래소에 상장해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끌어모으는 행위다. 좋은 기업들이 거래소에 상장해 누구나 그 기업의 주주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주식시장
프로는 '프로다움'이 생명이다
우리 때는 운동만 잘해도 사랑받았지. 경기 외적인 일은 내부에서만 알지 밖에서는 몰랐으니까. 요즘 후배들은 말, 행동 모두 조심해야 하는 시대야. (중략) 선배들 책임이 크다고 봐. 아직도 여러 지도자는 경기력 얘기만 하니까.몇 년 전 점심 자리에서 만난 한 원로 체육인은 여러 프로 종목 선수가 각종 사건, 사고에 휘말려 여론의 뭇매를 맞는 일을 언급하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축구, 야구, 배구, 농구 등 국내 프로스포츠 주요 종목은 초창기와 비교해서 양적, 질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종목의 성장 속도에 맞지 않게 프로답지 못
부패가 없는 나라?
민주화 이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에는 언제나 집권세력이 연루된 대형 부패 사건 때문에 온 나라가 떠들썩해지고는 했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김현철씨 관련 의혹이 불거졌고, 김대중 대통령 역시 아들 사건 때문에 대국민 사과를 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청와대 정책실장이 신정아씨와 관련된 사건에 연루됐다. 이명박 정부 막바지에는 대통령의 친형과 멘토가 구속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선실세 때문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탄핵됐다.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말 부패 스캔들에서 예외적으로 자유로운 것처럼 보인다. 임기 초에 청와대 정무수석이 뇌
남북미, '여우와 두루미의 대화' 끝내야
엇박자를 이어가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보면 여우와 두루미의 식사가 떠오른다.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단절된 남북, 북미 대화를 복원하기 위한 한미 양국의 노력은 일관되고 성실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코로나19 등 감염병 방역 협력, 관광분야 교류와 협력, 기후위기 공동대응 등의 카드를 제시하며 목이 쉴 정도로 대화 재개를 외쳐왔다. 한미 북핵 수석대표들 역시 서울과 워싱턴D.C를 오가며 보건, 방역, 식수, 위생 등 인도주의적 협력 분야를 우선순위에 놓고 대북 대화 재개를 시도 중이
여성이 보여주는 '거칠고 짜릿한' 승부의 세계
요즘 엄마의 최애 프로그램은 골 때리는 그녀들(SBS)이다. 이 프로그램이 그렇게 재밌대~라며 소개해줬더니 (진작) 재밌게 보고 있지~라고 답했던 엄마는, 각 선수들의 특징을 줄줄 읊으며 팀별로 가장 좋아하는 선수를 꼽을 정도다. 지난 주말엔 본가에 가서 부모님과 골 때리는 그녀들을 함께 다시 봤는데, 이제는 엄마 나름의 해설을 덧붙이는 경지(?)가 됐다.골 때리는 그녀들 속 선수들은 여자가 축구는 무슨 따위의 편견을 거침없이 깨부순다. 쉰이 훌쩍 넘은 나이에 무릎에 물이 차고도 멋진 헤딩을 보여준 신효범, 상대가 찬 축구공에 두…
여론조사의, 여론조사에 의한, 여론조사를 위한
여론조사, 그거 맞아?기사 쓰는 기자조차 팩트라고 믿지 않는 숫자를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하는 아이러니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잘 모르겠지만 일단 회사 이름을 걸고 조사도 하고, 조사했다 하면 톱에 배치한다. 그러면서도 여론조사에 대한 불안한 눈빛은 여전히 거두지 못한다.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그 정점을 찍는다. 2016년 4월, 20대 총선 일주일 전까지 발표된 여론조사만 보면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이 적어도 150석은 확보할 것으로 예상됐다. 막상 투표함을 까보니 참패할 줄 알았던 더불어민주당이 한 석…
'재난 생존자'들의 멈춰버린 시간
최근 여름마다 기록적인 재난이 찾아왔다. 이번 여름도 예외는 아니다. 늦게 시작한 장마가 찔끔 끝나버렸고 이후 열돔 폭염이 이어졌다. 2018년 이후 3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에 온열질환 사망자도 나날이 늘었다. 폭염의 최대 고비는 넘겼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태풍의 시간이 남아있다.해마다 심해지는 재난 탓에 여름이 길게만 느껴진다. 요즘 태풍은 가을인 9월, 10월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여름만 지난다고 재난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해마다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하면서 재난으로 인한 안타까운 죽음을 목격했다. 지난해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