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귀와 눈을 막을 셈인가?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7.12.12 11:25:04
17대 대선 최대 분수령인 BBK 수사에 대한 검찰 발표가 지난 5일 있었다. BBK를 둘러싼 이른바 ‘4대 의혹’과 관련해 검찰은 이명박 후보에게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 출입 기자는 물론 검찰 내부에서 조차도 4가지 사안 모두에 대해 검찰이 ‘단호한 어조’로 ‘혐의 없음’ 결론을 내리라 예측한 사람은 적었다. 때문에 검찰 발표에 대한 각 후보의 입장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대선을 불과 보름 정도 앞둔 상황에서 BBK 발표가 갖는 정치적 무게를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후보에 대한 보도행태이다. 어찌 생각하면 언론이기를 포기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진실을 추구해야 할 언론이 BBK의혹을 오히려 덮어두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한심한 것은 이명박 후보의 BBK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 당시 이명박 후보를 인터뷰 했던 언론들의 침묵이다. 한국기자협회는 10일 이러한 언론을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기자협회는 이날 성명에서 “몇 년 전에는 ‘내가 BBK 대주주이자 경영진’이라는 이명박 씨의 발언을 만천하에 알려놓고, 이제와서는 ‘나는 BBK와 관련없다’는 이 씨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 적고 있다”고 힐난했다. 또한 “검찰 수사결과를 보도자료 삼아 앞장서서 ‘면죄부’를 내주고 있다. 부끄러운 우리 언론의 자화상”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검찰 발표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코미디다. 한 신문은 1면에 “5년마다 온 나라가 사기꾼에 놀아나다니”란 제목에 “6개월 이상 국가 에너지만 낭비, 대선 때면 이런 꼴 당해야 하나”며 친절한 설명까지 달았다. 4면에는 “1백여명 소환, 계좌 추적 1백% 완료, 상황 97% 복원”이라며 검찰의 수사 노력까지 치켜세우는가 하면 “최재경이 맡은 건은 뒷말이 없다”며 수사팀장의 노고까지 치하했다.
또 어떤 신문은 “최대 장애물 넘은 이명박 대세론 날개”라고 제목을 뽑았고 또 한 신문은 “BBK 사기극에 놀아난 한국 정치”란 1면 제목에 “대선 최대변수가 사라졌다”고 못박았다. 도대체 누구의 입장에서 대선 최대 변수가 사라지고 누가 날개를 달았단 말인가? 그럼 이명박 후보 자신도 시인한 자녀 위장 전입, 세금 탈루 외에 숱한 의혹도 모두 BBK와 함께 사라졌단 말인가?
일부 언론의 이런 ‘노골적 편들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16대 대선 선거당일 한 신문은 정몽준 의원의 노무현 후보 지지 철회를 두고 “정몽준, 노무현을 버렸다”란 사설로 이회창 지지를 선동해 두고두고 문제가 됐다.
대선 때만 그랬던가? 노 대통령 탄핵 당시 한 신문은 사회면 머리기사로 ‘관두려면 빨리 관두라는 식’의 제목을 뽑기도 했고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어도 나라는 잘 돌아간다. 고건 총리를 중심으로 빠르게 안정을 찾고 있다’는 식으로 탄핵을 기정사실화하기도 했다.
왜 집권 여당을 비난하느냐고 나무라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지지 후보가 있더라도 후보 사이의 기사 양과 질은 철저히 형평을 유지해야 한다. 지지 후보에게 유리한 발표라고 해서 마치 대통령이 된 것 처럼 기사를 몰아주고, 반대 후보에게 불리하면 융단 폭격을 가하는 보도 태도는 옳지 않다. 이건 어떤 정권이 들어서고 어떤 후보가 나오더라도 마찬가지다.
역대 대선 가운데 선거가 임박하도록 이렇게 혼전을 거듭한 적은 드물었다. 이럴 때 일수록 언론은 정확한 정책 비평과 인물 검증으로 국민에게 판단의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나아가 이명박 후보를 인터뷰했던 신문들은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 예전 다르고 지금 다른 이유를 말이다. 기자협회가 성명에서 주장한 것처럼 예전 이명박 후보의 인터뷰 내용에 대해 오보면 오보, 사실이면 사실이라고 밝혀야 한다. 언론은 더 이상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