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방담-올림픽보도 이것만은 고치자
언론사간 경쟁으로 비효율적 취재 태반, 세계적 경기 인력 투입 안되고 국내선수 쫓아다니기 바빠
정리=박주선 | 입력
2000.11.19 00:00:00
1일 올림픽이 끝났다. 올림픽 취재를 마친 기자들은 시드니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돌아왔을까. 시드니를 다녀온 방송사, 스포츠지, 종합지, 통신사의 취재·사진 기자 4명이 6일 저녁 기자협회 회의실에 모여 기억에 남는 현장 경험담부터 ‘이것만은 고치자’까지 올림픽을 화두로 얘기를 시작했다. <편집자주>
―아마 기자들에겐 가장 재미없는 올림픽이었을 겁니다. 시차상 시드니는 한국보다 두 시간이 빨라서 한국 마감 시간인 12시에 맞춰 밤에는 새벽 2시까지 일하고, 아침에는 경기 시작하기 전인 7시에는 일어나야 했죠. 한 달 가까이 하루 5시간 이상을 못 자다보니 올림픽 끝난 다음날 하루 쉬는데도 다들 밖으로 안나가고 잠만 잤어요.
―기자들 골탕먹이는 올림픽으로 기억될 만 하죠. 특히 올림픽 자원봉사자들 가운데 노인들이 많았는데 지나치게 원칙을 지키려 하는 바람에 고생이 많았습니다. 한 예로 경기장 내에 ENG 카메라를 갖고 들어가는 것을 금하는 표지판이 붙어있자 우리 멍텅구리 카메라도 반입이 안 된다고 해서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죠.
―숙소에서 늘 똑같은 음식이 나오는 것도 고통스럽더라고요.
―방송은 9시 뉴스에 맞춰서 주요 메달 소식을 전해야 했던 게 어려움이었어요. 우리나라 금메달 소식이 그 쪽 시간으로 9시가 넘어서 결정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정말 발빠르게 움직이는 기자들이어야만 보도가 가능했습니다.
국내 기자들에겐 마감하기 수월했던 올림픽으로 꼽히던 시드니 올림픽이 현장 기자들에게는 고생스런 기억을 줬다. 좋았던 쪽도 나빴던 쪽도 가장 큰 탓은 시차라고. 게다가 시드니에선 기사 전송도 큰 문제 중 하나였다고 한다.
―호주의 전송 기술은 우리보다 훨씬 후진적이라 놀랬어요. ISDN 회선 임대료가 8000달러나 됐어요. 우리가 보기에는 낙후된 기술인데 그 쪽에선 최첨단 기술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비용은 비싸고 전송 속도는 느리고. 우리도 기사 보낼 때 인포넷이 자주 끊어져서 전화를 사용했어요.
―또 주최측이 경직되어 있더라고. 랜을 설치하려고 했더니 신청기간도 끝나고 공사기간도 끝났다고 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한번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좋게 얘기하면 원리원칙을 지키는 것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융통성이 없는 거죠. 국내에서 취재하던 습성, 소위 대우받던 것과는 천지차이였죠. 물론 그것도 적응이 되긴 했지만.
역시낯선 곳, 낯선 문화에서 취재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자들은 해결하기 불가능한 문제라고 보지는 않았다.
―교토 통신의 경우 올림픽 시작 1, 2년 전부터 현지에 기자들을 상주시키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을 걸요. 우리는 올림픽에 임박해 현지로 가서 취재를 하다보니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요.
―올림픽이 열리기 몇 달 전에 각 사에서 한 두 명이라도 파견해서 현장에서 충분한 서베이를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연합뉴스가 준비를 많이 했어요. 사진 전송의 경우 휴대전화를 이용한 무선 전송 시스템을 미리 준비해서 효율적이었어요. 또 전문 기술자와 항상 같이 다니니까 기술적인 부분을 점검해 줄 수 있죠.
결국 기자들이 내놓은 처방전은 ‘보다 철저한 준비’였다. 그와 함께 취재 관행상의 구조적인 문제들도 도마위에 올랐다. 참석자들은 풀단 구성, 질보다는 양을 추구하고 있는 제작 시스템, 전문기자 부재 등 시드니 현장에서 느꼈던 문제점들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사진기자들의 경우 취재단을 구성했는데 풀단 내에서도 갈등이 생겼어요. 스포츠지, 조간, 석간 모두 마감시간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잖아요. 석간에 막을 수 있는 기사도 조간 마감시간에 맞춰 내보내는 경우도 있고. 그러면 같은 비용 부담하고 억울해하는 언론사가 생기죠.
―방송사는 92년까지 풀단을 운영했어요. 근데 하다보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어요. 기사 주기로 했다가 몰래 자기네 사에만 먼저 보내고. 그럴 바에는 각자 하자고 했죠.
―그럴 거예요. 방송사마다 추구하는 칼라가 달라서 담고 싶은 장면도 다를 것이고.
―근데 신문사들은 방송사에 비해 파견하는 기자 수가 적잖아요. 풀단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요. 모든 기자들이 똑같은 한국 경기에만 가지 말고 전 경기를 나누어 맡으면 보다 질 높은 보도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똑같은 인터뷰하려고 수십 명의 기자들이 몰려 있는 걸 보면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동감이에요. 올림픽은 기자들에겐 외국 기자들과 당당히 겨룰 수 있는 무대인데 국내 기자들끼리 경쟁하다보니 세계적인 경기에는 기자들이 거의 투입되지 않았어요. 자연히 지면에 실린 사진의 절반 이상이 외국 통신사에서 받은 것이더라고.
―면 메우는 데만 급급한 언론사 풍토도 바뀌어야죠. 또 부끄러운 얘기지만 ‘빠떼루’가 기사에 계속 나오더군요.업무량에쫓겨 정신없이 하다보니 그런 건데 독자들에게 알찬 정보를 제공했는지 생각해보면 부끄럽죠. 사실 종목별 전문 기자도 거의 없어요.
―교토 통신은 각 종목별로 기자들을 배치하는데, 그러면 전문적인 기사가 나올 수 있어요. 우리처럼 종합지의 기자 대여섯 명이 전 경기를 커버하는 것과는 천지차이죠.
―그래요. 경기룰도 모르는 기자들이 기사를 쓰게 된다니까요. 기자들이 남자 하키 감독을 인터뷰하다 경기 규칙을 물어보니까 감독이 그런 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면서 난색을 표하더라고요.
―아직 우리는 올림픽이 취재라기보다는 행사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어요. 올림픽 다녀오는 것을 기자로서 큰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수혜라고 생각해요.
―언어도 취재의 큰 장벽이에요. 영어만 되면 한국 기자들 어디가나 잘 할 수 있어요. 근데 세 마디만 넘어가면 말이 안 되거든요. 결국 ‘오케이 땡큐’하고 돌아올 수 밖에요.
―공감합니다. 현장에 영어, 일어에 능통한 사진 기자가 있었는데, 역시 외국 통신사들과 의사소통이 되니까 나중에는 사진까지 교환하는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더라고요.
구체적인 보도 내용으로 얘기를 돌려보자. 흔히 올림픽 보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금메달 지상주의에 대한 의견들도 들어 보았다.
―올림픽 취재 포인트를 남북 문제와 금메달 지상주의 지양으로 잡았어요. 다행히 첫 메달이 불우한 환경에서 열심히 운동했던 강초현 선수에게서 나오면서 휴먼 드라마를 만드는 게 가능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금메달 지상주의에 빠져있다는 비판이 나오기는 해요.
―현실적으로 금메달 보도를 자제하라는 것은 몽상가적인 발상이에요. 금메달 따기 위한 선수들의 노력은 또 어떡하라고.
―언론이 원해서 하는 것보다는 여론이 요구해서 하는 것도 사실이에요. 올림픽은 국가간 경쟁인데, 당연히 우리 선수들의 메달 소식이 궁금하죠.
대부분의 언론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장애인 올림픽 보도, 기자들의 카지노 도박 소동에 대해서도 솔직한 얘기들이 이어졌다.
―장애인 올림픽은 보건복지부 담당이기 때문에 관행상 체육부에서는 다루지 않고 있어요. 지면 배당하기도 그렇고, 거의 보도가 안된다고 봐야죠. 안타깝지만.
―카지노 도박이라? 글쎄, 취재 끝나고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태극기 달고 국가 대표로 간 선수들과 기자의 경우는 다른 것 같아요.
―기자들이거액의돈을 썼다던가 해서 큰 문제가 생겼다면 모를까 여가 시간을 즐긴 정도인데 문제가 될까요?
마지막으로 방담을 정리하면서 한 마디를 부탁하자 한 기자가 남북 동시 입장 얘기를 꺼냈다.
―차를 타고 가는데 남북 선수단 동시 입장 소식이 호주 저녁 뉴스 헤드라인으로 나오더라고요. 호주에서도 큰 관심거리였나 봐요.
―맞아요. 호주는 분단 국가들에게는 의미있는 올림픽 개최지예요. 56년 멜버른 올림픽 때는 동서독이 동시 입장을 했거든요.
―남북관계도 많이 바뀌었어요.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 선수들끼리 굉장히 가까워지고. 예전에는 거리감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북한 선수단 사무실로 전화하면 친절하게 잘 받아주고 냉전의 잔재는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통일이 되기는 되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던데.
―그럼요.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에요. 북한 선수를 취재하는데도 협조가 잘 돼서 굉장히 수월했어요.
4년 후 아테네 올림픽 방담에는 어떤 얘기들이 나올까. 오늘 기자들이 얘기한 문제의식이 보다 더 나은 올림픽 보도를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