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 DDoS 공격 북한 배후설 여론몰이
근거없이 국정원·정부 당국자 인용 통해 단정적 보도
곽선미 기자 gsm@journalist.or.kr | 입력
2009.07.15 14:23:15
야당·진보신문 “테러법 통과, 국면전환용 사이버 북풍”국가정보원(국정원)이 지난 7일 DDoS(분산서비스 거부) 공격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한 것과 관련, 정치권의 공방이 치열한 가운데 일부 보수신문이 뚜렷한 근거 없이 북한 배후설에 힘을 싣는 보도를 했다.
지난 8일 동아·조선·중앙일보는 일제히 DDoS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동아는 이날 1면 ‘청와대-국방부-美 백악관 홈피 정체불명 해커 공격…한때 다운’ 기사에서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좀 더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중국과 북한 등 제3국 해커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5면에서는 “북한의 해킹 실력이 통제 수준을 넘어섰다. 사이버 전담부대인 ‘기술 정찰조’를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사실상 북한이 배후임을 단정했다.
동아는 이튿날인 9일에도 정부관계자와 국정원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북한 혹은 종북 세력”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동아는 DDoS를 북한의 ‘사이버 테러’로 규정하며 북한 의심 증거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사이버스톰에 한국 참여 움직임 비난 △공격 대상 한국·미국 △IP 추적 등 통해 북한 혹은 해외지역에서 공격 증거 확보 등이다. 동아는 북한이 DDoS 공격을 편 이유에 대해서 “대외 공세의 연장선으로 고도의 심리전을 동원해 미국과 한국의 대북 정책의 전환을 노리겠다는 몸부림”이며 “2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후 새 카드가 없는 상황에서 나온 궁여지책”이라고 해석했다.
이와 함께 별도의 박스기사에서 북한에 최정예 해커부대가 5백~6백여 명이 있으며 미국 중앙정보국(CIA)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조선 중앙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앙은 9일 이날 1면을 비롯해 2~3면, 4~5면에 걸쳐 북한 배후설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2~3면에서는 DDoS 공격이 북한과 그 추종세력의 소행이라는 국정원의 주장이 몇 가지 근거에서 비롯됐다며 북한이 인터넷 활동의 근거지로 삼아온 중국 지역에서 최근 사이버 테러 관련 움직임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또한 김정일 사망 15주기인 8일에 맞춰 한·미를 상대로 공격을 감행했다는 분석도 있다고 주장했다. 중앙은 4~5면에서 “국가간 총성없는 사이버 전쟁, 이젠 소설이 아니다”라며 DDoS 공격을 ‘전쟁’에 빗대어 표현했다.
조선은 9일 정부 당국자와 국정원 관계자의 말을 인용, “아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지만 북한 소행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 중”, “일부에서 북한이 배후에 있다고 추측한다”고 보도해 다른 두 매체보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으나 북한 배후에 무게를 둔 것은 같았다.
10일부터 정치권의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며 민주당을 중심으로 “국정원이 테러법의 통과를 위해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으로, 사이버 북풍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본격 제기됐지만 이들 매체는 여전히 북한 배후설에 가능성을 뒀다.
동아는 10일 1면에서 “미국이 공격 배후로 북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조선은 4면에서 AP와 Fox뉴스를 인용해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맞춰 북한이 배후 조종했다”는 이들의 보도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중앙은 4면에서 “북한의 사이버전법은 중국의 ‘점혈(급소) 전쟁술’을 모방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이들 매체는 3일 동안 북한 배후설의 관련 보도를 쏟아냈으나 7·7 DDoS 공격이 북한이라는 증거는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검·경찰은 북한 배후설이 근거가 없어 단정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방통위는 “국제인터넷기구(ICANN)에서 도메인과 메인 IP 주소를 설정해주는데, 북한은 IP 주소 할당이 안돼 있다”면서 “북한 IP 주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을 DDoS 공격의 배후로 지목할 만한 기술적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국정원이 사이버 공격에 편승해 공안 정국을 활용하려 한다”며 “김정운 후계 지명설에 이어 뚜렷한 근거 없이 북한 배후설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방통위는 14일 “숙주서버에 악성코드를 퍼뜨린 마스터 IP가 하나 발견됐는데 영국이었다”며 “또 다른 마스터의 존재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