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뉴스 연성화 심각하다

[우리의 주장]편집위원회

시청률이 높은 뉴스를 만들 것인가, 시청률은 낮더라도 의미있는 뉴스를 만들 것인가?

방송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의 전통적인 고민이다. 아무리 의미있는 뉴스를 만든다 하더라도, 시청률이 바닥이라면 좀 곤란하지 않느냐는 것이, 뉴스의 성적이 자신의 평가와 직결되는 방송사 보도국 간부들의 변함없는 주장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방송사들의 뉴스에서 벌어지는 연성화 경쟁을 보면 이런 고민이 더 이상 순수한 ‘뉴스 철학의 차원’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국내 방송사 뉴스의 주요 소재들은 추위 아니면 동물이다. 추위와 동물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다. 덕분에 서울동물원을 탈출한 말레이곰은 연일 주요 뉴스를 장식했고, 동물원 동물들의 겨울나기가 메인뉴스의 주요 시간대를 채웠다. 심지어 추위 뉴스는 대개 같은 얘기를 반복함에도 불구하고 10~15꼭지가 뉴스 전반부를 장식했다. 반드시 등장하는 또 하나의 소재는 CCTV다. 어느 채널을 돌려봐도 은밀한 CCTV가 화면을 채우고 있다.

뉴스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게 아니라 이른바 ‘그림이 있느냐, 없느냐’가 뉴스의 선택 기준이 돼 버린 것이다. 심지어 CCTV 하나만 갖고 리포트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해 MBC가 주말뉴스를 8시로 한 시간 앞당겨 SBS 8뉴스와의 정면승부가 본격화되면서 더욱 심화됐다. 두 방송사의 간부들은 물론 일반 기자들까지 주말이 되면 실시간 시청률 표 앞에 앉아 경마중계 보듯 시청률 곡선에 일희일비한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선정성 경쟁이 두 방송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올해 중에 종편들이 속속 개국을 하게 될 것이고, 초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메인뉴스 시청률 경쟁은 극에 달할 것으로 우려된다. 일단 시청률을 올려놓기 위해서는 방송사마다 가능한 ‘보는 뉴스’에 치중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뉴스의 연성화 경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경쟁 속에서 ‘정말 보도해야 하는 사안’은 철저히 배제된다는 점이다. 시청률 경쟁이라는 미명 하에 시급한 사회갈등이나 딱딱한 논란거리는 뉴스를 선택하는 보도 담당자들 사이에선 별 인기가 없다.

논란거리를 뉴스로 다루겠다는 현장의 요구에 상당수 보도국 간부들은 ‘그림이 안된다’ 라든지, 심지어는 대놓고 ‘시청률에 도움이 안된다’는 이유로 묵살하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백번 양보해 시청률 때문에 이런 결정을 한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집권층의 암묵적 동의 내지는 집권층에 ‘알아서 기는’ 모습을 보이기 위한 것일 가능성을 떨쳐버릴 수 없다. 사회적 논란거리나 정권에 부담이 될 만한 뉴스 소재는, ‘그림이 안된다’는 이유로 철저히 배제되는 것이다.

물론 뉴스의 개념은 변하고 있고, ‘많이 보는 뉴스’라는 가치 역시 완전히 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시청률의 가면을 쓰고 지금 우리 방송 뉴스는 너무 많은 가치를 외면하고 있다. 나아가 정권과의 교감 속에서, 보도국 내부의 소통 부재 속에서, 연성화 경쟁 속에서, 지금 한국 방송사들의 메인뉴스는 ‘의제’도, ‘화제’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종편의 출범과 함께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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