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열풍 보도 유감

[언론다시보기] 정진영 영화배우


   
 
  ▲ 정진영 영화배우  
 
일본 동북 지방의 대지진과 쓰나미는 우리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수많은 목숨이 한 날 한 시에 숨쉬기를 멈췄고,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까지 현재진행형인 후쿠시마 원전의 위기는 전 세계인의 가슴을 서늘케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벌어진 비극이지만 그 슬픔은 일본 땅을 넘어서 전 세계인의 애도로 이어졌습니다. 원전 방사능 노출에 대한 공포는 ‘핵에너지’를 바라보는 인류의 경각심을 다시 한번 일깨웠습니다.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표하며 이번 글에서는 이번 사태에서 파생된 한 에피소드를 차분히 따져 볼까 합니다.

쓰나미 발생 초기에 있었던 한 방송국 뉴스의 보도가 문제가 되었던 것을 다들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른바 ‘한류 열풍 식을까 염려된다’라는 보도였지요.

그에 대한 거센 여론의 비난이 이미 있었기에 그 보도의 시의적절치 못한 보도방향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대신 그 재난의 와중에도 화두로 등장했던 ‘한류 열풍’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저 자신이 10년 넘게 대중예술계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솔직히 한류 열풍을 이끄는 스타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를 방문했을 때 외국인들의 ‘한류 열광’ 현상을 심심치 않게 접합니다.

간혹 저를 알아보는 외국인도 있고, 저의 직업을 모르는 사람들도 제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 유명 스타의 이름을 거론하며 친근감을 표시하는 경우도 아주 많습니다.

전 세계 1백여 개국에서 방영된 우리 드라마도 있고, 유명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도 많습니다. 열광적인 팬을 거느린 유명 스타도 많고, 그들을 앞세운 여러 마케팅 행사도 많습니다. 얼핏 보면 한류의 핵심은 ‘스타’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저의 소견은 다릅니다.

한류 열풍의 시작은 일본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열풍의 시작격인 ‘ㅂ’ 배우는 일본에서 거의 신처럼 추앙받는다고 하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ㅂ’ 배우의 일본에서의 이미지와 매력 포인트는 한국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우리는 그 배우의 곱상함과 부드러움을 기억하는 반면 일본의 팬들은 그로부터 ‘터프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저는 그것으로부터 한류 열풍의 핵심이 무언가에 대한 생각의 단초를 얻게 되었습니다. ‘ㅂ’ 배우로부터 일본의 팬들이 느낀 터프함은 그가 출연한 드라마 속의 그를 본 것이고, 결국은 그 드라마가 갖고 있는 터프함을 일본 팬들이 발견한 것이 아닐까요?

결국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가 갖고 있는 역동성이 일본 팬들을 매료시켰고, 그 역동성은 드라마의 소재와 배경이 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비롯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1백여 년간 우리 사회는 숨가쁘게 달려 왔습니다. 피식민지의 경험을 했고, 한국전쟁이라는 참담한 비극을 겪었습니다. 그로부터 수십년간 군부가 주도한 지배체제 속에 있었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민주화를 이루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황무지에서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 속에서 살아온 우리의 삶은 좋든, 싫든 수많은 변화를 겪어왔고, 사회 자체가 뜨겁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왔습니다.

놀랍게도, 우리가 당연시하는 변화와 역동성을 전 세계인은 자신 안에 없는 그 무언가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역동성을 한국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느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전문분야는 아니지만 상품의 해외수출을 기획할 때, 이른바 현지화 전략이 주요 과제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그러나 문화상품은 예외라고 생각합니다. 달라야 매력이 있고, 지극히 한국적이어야 호소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도 그 중 하나일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건강하게 바라보고 우리 자체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류 열풍이 식을까를 고민하는 판단근거로 스타 마케팅의 기회가 줄어드는 것을 염려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예술작품이 세계화라는 구호 아래 고유의 색깔을 잃어가는 것을 염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담이지만 이른바 정체된 사회라고 하는 일본은 이번 재난을 관통하며 놀라운 역동성과 미덕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방사능 오염을 두려워하지 않는 소방대원과 원전직원들의 분투는 향후 몇 년간 전 세계인을 감동시키는 문화예술작품으로 ‘일류 열풍’을 가져올 것이라고 저는 조심스럽게 예견해봅니다. 그 이야기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없는 것이니까요.

스타의 존재는 소중합니다. 그러나 스타 마케팅이 한류 열풍의 핵심으로 받아들여진다면, 문화예술종사자인 저 자신과 동료들에게도 그렇고 결과적으로 우리 한류 자체에게도 슬기롭지 못한 미래를 제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재난의 와중에 일본인들을 가장 감동시킨 존재는 수요집회에서 일본 비난 구호 대신 진심어린 애도를 표시한 일제강제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나직한 몇 마디의 음성이야말로 한류 열풍의 기본인 우리의 진정한 역동성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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