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언론처럼 과학기자 육성하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편집위원회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1.04.12 15:30:15
언론사 입사 17년차인 과학전문 A기자. 입사 이래 줄곧 기상과 과학 분야를 담당해 왔다. 이 언론사의 과학과 의학담당 기자는 부장급 1명을 포함해 단 4명.
봄에는 황사로, 여름과 가을이면 태풍으로, 겨울이면 폭설로 일주일씩 밤새우는 일은 기본. 이런 기상 이변과는 별도로 매일 날씨 기사를 처리해야 하니 휴가를 가기도 눈치가 보인다. 요즘처럼 일본 원전 기사가 쏟아질 때는 식사조차 건너뛰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국 언론사에서 근무하는 ‘과학전문 기자’들의 현주소다.
일본 아사히 신문에는 과학과 의학 전문기자를 모두 합해 50명이 근무하고 있다. 요미우리 신문 역시 과학 및 의학전문 기자만 50여 명, 마이니치 신문은 조금 적은 40명 수준이다. NHK 역시 수십명의 과학·의학 담당 기자들이 기사를 쓰며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아사히 신문의 경우 과학 전문지인 ‘사이언스’가 발간되는 워싱턴DC에 과학 담당 특파원까지 두고 전문적이고 심층적인 과학기사를 싣고 있다.
또 다른 과학전문지 ‘네이처’가 발간되는 영국 런던에도 과학 특파원을 둔 언론사가 일본에는 여럿 있다. 일본 언론사 한 곳의 과학 담당 기자 수가, 한국 모든 언론사의 과학기자를 다 모은 수와 비슷할 정도이다. 기자의 수만으로 기사의 질을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양질의 기사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 아닐까.
대한민국 언론은 이미 황우석 교수 사태 당시 그 전문성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노정한 바 있다. 조금의 의심도 없이 한국 언론들은 황우석 교수의 일방적인 주장을 기사화해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다. 물론 사전 검증이 어려웠던 점도 없지는 않지만 일부 과학전문 기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황교수 주장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과학에 특별한 전문적인 지식은 없었지만 저널리스트로서의 ‘순수한 의문’에서 출발한 PD수첩 제작진이 나서서 허구의 벽을 깨뜨렸다는 점은, 한국 기자들이 두고두고 부끄러워해야 할 듯하다.
2년 전 신종플루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을 때도 한국언론의 ‘과학무지증’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각 언론사에 과학과 의학을 전문적으로 취재하고 내용을 이해하는 기자들이 너무 적다 보니 신종플루의 위험성은 필요 이상으로 과장됐고, 각 구청이나 동사무소마다 손 소독기를 비치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지금 전국에는 수천 개의 손 소독기가 예산낭비라는 지적 속에 대부분 방치돼 있다.
최근의 일본 원전으로 인한 방사능 사태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일본 언론의 차분하고도 치밀한 방사능 보도와 비교해 한국의 방사능 보도는 ‘그때그때’ 다르다. 과학을 제대로 아는 기자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과학을 잘 아는 기자를 선발했다 하더라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한 경제신문사는 국내 유수 대학의 공대 박사학위를 가진 기자를 선발하고선 몇 년째 ‘증권부’에서 일하도록 하고 있고, 또 다른 언론사 역시 화공과 석사학위자를 선발해 놓고 10년 가까이 사회부기자로만 돌리고 있다. 이는 기사에 전문성이 필요없다는 선언이나 다름 없으며, 자기 언론사의 기사가 ‘비전문적임’을 대외에 공개하는 것과 같다.
과학기자들의 재교육 역시 요원한 과제다. 현재 국내에 과학기자들이 해외에서 재교육을 할 수 있는 채널이라고는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과학창의재단이 주관하는 해외연수 프로그램 단 하나 뿐이며, 연수자 역시 1년에 단 한 명에 불과하다.
지금부터라도 언론사들은 진심으로 과학기자들을 뽑고 길러야 한다. 허울뿐인 과학기자육성은 안된다. 이번 일본 원전의 대재앙을 거울삼아 전문성 있는 과학기자를 길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