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사의 퇴행을 우려한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가 올해 광복절에 이승만의 일대기 특집을 5부작으로 편성해 방영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시민들이 숱한 피를 뿌리면서 4·19 혁명을 통해 권좌에서 끌어내린 이승만은 ‘독재자’로 역사적 평가가 내려진 인물이다.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측은 한 인물에 대해 60분짜리 프로그램을 5편이나 편성해 무려 3백분 동안이나 방송한 사례는 없다면서 사측이 주도하는 유례없는 ‘이승만 띄우기’가 ‘정치적 의도’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처럼 전무후무한 형식으로 이승만을 다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한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KBS 사측의 설명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자리매김하고,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고 시도해 온 뉴라이트 등 특정 정치세력의 주장과 일치한다는 것이 노조 측의 주장이다. 현 정부 들어 영향력을 확대해 온 ‘특정 정치세력’의 주장을 공영방송 KBS가 직접 나서서 전달하겠다는 것 자체가 ‘특정 정치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 특보 출신 사장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역사적 반역’이라는 내부의 저항에 더해 독립운동 단체들의 극심한 반발까지 일고 있지만 이에 대해 사측은 이승만 특집을 반대한 제작진을 전원 교체하고, 새로운 제작진을 꾸려서 제작을 강행하고 있다고 한다. 제작진의 양심과 신념을 훼손하면서 일방적인 지시로 프로그램 제작을 밀어붙이는 ‘이승만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 2011년 우리의 공영 방송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영방송사의 시대착오적인 행태는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MBC에서는 최근 김재철 사장이 추진하는 전북 ‘무주 페스티벌’이 사내외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MBC 사측은 전체 인력의 60% 이상이 참여하는 대규모 동원행사를 기획하다가 비판이 커지자 행사 규모를 축소하기로 했다. 10억원의 예산을 써서 MBC 직원 수천명이 한자리에서 장기자랑과 윷놀이, 줄다리기 등을 하면 화합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회사 측은 밝히고 있다.

MBC 노조에 따르면 김재철 사장은 작년 김 사장이 촉발한 파업 과정에서 해고자와 징계자가 속출하며 생긴 상처를 이 같은 대규모 동원 행사를 통해 봉합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MBC 사내외에서 30년 전 전두환 정권의 ‘국풍 81’과 ‘무주 페스티벌’이 ‘같은 유전자를 가진 불순한 동원행사’라고 비판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구성원들이 냉소하는 이런 행사가 기획되는 동안 MBC에서는 제작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마뜩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김미화씨가 8년 가까이 진행하던 라디오에서 하차하는 일도 벌어졌다.

진행자를 결정하는 프로그램 제작진이 시위까지 하며 교체를 반대했지만 김씨가 끝내 하차하게 된 데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것은 사내외에서 알려진 사실이다. 군사정권 시절에나 벌어지던 일이 세월을 뛰어넘어 또다시 공영방송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앞서 열거한 공영방송사들의 퇴행적인 모습이 유독 현 정부 들어 빈발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주목한다. 방송을 장악해 비판과 감시 기능을 위축시킨 일방주의의 결과가 국정의 성과로 이어졌는지, 실패로 이어졌는지는 정권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정권과 여당은 일주일 전 재보궐 선거의 결과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민심이 선거로 드러나기 직전까지도 정책의 성패를 가늠하지 못하고 여론의 향배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 원인이 과연 무엇인지,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다며 스스로의 눈과 귀도 닫아버린 ‘언론 퇴행‘ 정책의 결과는 현 정권의 몫임을 이제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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