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방송·종교방송을 고사시킬 셈인가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편집위원회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1.08.29 17:31:00
한 지역민방 보도국은 올해만 4명의 기자가 회사를 떠났다. 종합편성채널로, 다른 직종으로, 아예 한국 사회를 떠나 해외로 간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남은 동료들은 하루 2~3개 이상의 리포트를 제작하면서 초인적인 능력으로 뉴스를 메워나가고 있다고 한다.
언론계를 떠나는 이들의 이유는 다들 제각각이겠지만 ‘불확실한 미래’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이들이 느끼는 불확실성은 올해 말부터 종편사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경우 지역방송이나 종교방송 등 중소 규모의 방송사들이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될 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형성과 반영자, 중앙과 지방의 커뮤니케이터에서, 이제는 사회갈등의 조정자까지. 지방자치제도가 20년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점에 지역방송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종교방송은 또 어떤가. 종교와 일반인을 연결시켜 사회통합이라는 공익을 위해 매진하는 종교방송의 역할은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중요한 완충지대로 자리잡고 있다. ‘방송은 공공재’라는 대전제를 감안한다면 지역방송과 종교방송 등 ‘특화된 방송’은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 말부터는 ‘종편’이라는 공룡이 등장해 아무런 통제 기능이나 제어수단 없이 이들과 정면승부를 하게 생겼다. 정부와 국회가 미디어렙 관련 법안을 처리하지 않을 경우 종편은 독자적인 광고영업을 하게 될 것이고 이들이 지역이나 종교방송과 정면승부를 벌이게 되는 것이다. 어른과 어린아이의 싸움이 될 것이 자명하다. 헌법재판소는 코바코의 방송광고 독점 판매대행 행위가 위헌이라고 판단하면서도 ‘방송광고 취약 매체에 대한 지원은 공적 광고제도의 기능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취약 매체에 대한 보호책을 인정한 헌재의 판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전국 9개 지역민방의 광고매출이 최근 4년간 23% 감소했다고 한다. 여기에다 종편이 독자영업을 시작할 경우 지역방송은 1년 동안 매출 20%가, 종교방송은 1년간 매출 30%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 같은 수치는 지역방송의 현실과 미래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아무런 법적 통제 제도 없이 종편 방송사들이 독자영업을 시작할 경우 지역 지상파 방송들의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다. 배스 같은 외래어종이 우리나라 생태계를 어지럽힌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 언론의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을 의미한다.
해외 각국도 지역언론이나 중소언론에 대한 지원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각종 법과 규정을 통해 중소언론을 보호하는가 하면 지역방송의 보호 정도를 보고 방송 면허의 갱신 여부를 결정하는 곳도 있다. 모든 제도가 방송의 공공성, 여론의 다양성이라는 전제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인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는 미디어렙 관련 법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 여야는 자신들만의 셈법으로 관련 법안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면서 조·중·동 등 종편 방송사들의 이익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비치고 있다. 동시에 취약 매체에 대한 지원책도 마련돼야 한다. 광고 연계 판매 등의 지원 제도를 보장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승자독식의 논리가 시장을 지배하면서 그로 인한 폐단이 사회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무한경쟁을 넘어 새로운 경쟁의 틀을 만들자는 이론이 싹트고 있다. 모두가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 함께 공존하자는 사회적 합의인 것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언론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지역방송이나 종교방송 같은 ‘공공적 가치를 지키는 보루’를 우리 스스로가 지켜내야 한다. 건강한 언론 생태계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