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주법 vs. 나경원법

[스페셜리스트│법조] 심석태 SBS 기자·법학박사


   
 
  ▲ 심석태 SBS 기자·법학박사  
 
‘표현의 자유’가 희화화되고 있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이벤트 수준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정봉주법’과 ‘나경원법’으로 명명된 선거법 개정안을 보면 우리 정치권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정치의 종속변수 정도로 취급하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해진다.

1월 9일 민주당 의원들이 제출한 일명 ‘정봉주법’은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의 성립 요건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어떤 사실이 허위임을 알고 또 후보자를 비방할 목적이 있었음을 범죄 구성요건으로 명시해 검사에게 입증책임을 확실하게 지우자는 것이다.

허위사실공표죄에서 ‘허위사실’은 지금도 구성요건이고, 이를 검사가 입증해야 한다는 것도 분명하나 대법원이 검사의 입증 책임을 다소 느슨하게 해석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것이다.

허위사실공표의 입증 책임 문제는 오래된 논란거리이니 이를 정리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다루는 법안이 이렇게 특정 정치인 구명운동 차원에서 불쑥 제기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민주주의 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얘기하자면 허위사실공표죄에 앞서 사실의 공표를 기초로 한 ‘후보자비방죄’를 문제 삼는 것이 우선이어야 할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들 규정의 모태라 할 수 있는 형법상의 각종 명예훼손 관련 규정을 손보는 게 맞다. 각종 비리 혐의로 사법적 단죄를 받게 된 유력자들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고 고소와 소송을 남발하는 현실에 대해 민주당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 정봉주 전 의원 수감 이후에도.

‘나경원법’은 또 뭔가. 2월 6일 새누리당 의원들이 발의한 이 법안은 숫제 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죄에서 벌금형을 없애고 징역형도 ‘1년 이상’으로 규정해 처벌을 대폭 강화하자는 것이다.

법정형 최고가 징역 3년인 후보자 등에 대한 비방죄에도 ‘1년 이상의 징역’으로 하한을 설정하자는 다소 어이없는 내용도 들어 있다.

또 이른바 ‘공표’의 방법 가운데 ‘통신’이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모바일 메신저를 포함한다’고 명시해 SNS 등을 통한 선거 관련 의사표현을 확대하려는 최근의 사회적 움직임과는 상반된 접근법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새누리당이 총선 후보자를 뽑는 기준에 SNS 활동 성적을 넣는다고 떠들썩한 것하고도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지금 법으로도 SNS 등은 통신에 포함되거나 최소한 ‘기타 방법’에라도 해당될 것인데 어떻게든 더 선거 관련 표현을 옥죄겠다는 억지스러운 발상일 뿐이다.

정봉주법에 맞서 뭔가 해야겠다는 강박감의 결과물이겠지만 그래도 표현의 자유에 관한 법안을 ‘나경원 1억 피부과 보도’에 대한 수사 발표 1주일 만에 발의하는 신속성이 안쓰러울 정도다.

선거 시즌의 정치인에게 종합적 사고를 요구하기 어렵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민주주의 사회의 기초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가 정치권 입맛대로 재단되어서야 되겠는가.

곤경에 빠진 동료를 돕겠다는 의리도 좋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니다. 공연히 정봉주법, 나경원법으로 이름이 거론되는 사람들과 함께 표현의 자유가 희화화되어서는 곤란하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오히려 이번 기회에 비리 혐의 유력 인사들의 방패 역할을 하는 명예훼손 법제를 근본적으로 손보자고 나서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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