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지역이고 형평이다

[스페셜리스트│지역]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기자·갱상도 문화학교 추진단장


   
 
  ▲ 김훤주 경남도민일보 기자·갱상도 문화학교 추진단장  
 
경남 밀양에서 일흔셋 연세 되시는 어르신이 숨을 거뒀다. 2012년 1월16일 일이다.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사는 이치우 어르신은 이날 저녁 8시 즈음에 분신 자살했다. 한전에서 마을 둘레에 76만5000볼트 송전철탑을 세우려는 데 반대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장례는 3월7일로 예정돼 있다.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은 2005년 시작됐다. 주민들이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가장 큰 까닭은 전자파 위험이다. 충남 청양군 화성 지역에서 전자파 위험은 현실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 마을은 76만5000볼트가 아닌 34만5000볼트가 지나는데도 마을 어른들이 몇 년 사이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고압 송전탑이 지나가는 곳을 여러 군데 찾아다녔다. 이들이 가는 데마다 들은 얘기는 “죽어도 막아라”였다. 고압 송전탑 때문인지 아닌지 이른바 과학이 밝혀주지는 못하지만 송전탑이 들어선 다음부터는 기르던 가축이 까닭없이 죽어나가고 멀쩡하던 사람이 까닭없이 몹쓸 병에 걸리는 일이 부쩍 생겨났다는 것이다.

76만5000볼트 송전탑 문제는 생존권 문제다. 이런 곳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보상을 받아 다른 동네로 옮겨가 살면 되지 않느냐?” 그럴 듯하지만 그럴 듯하지 않다.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도록 법령이 돼 있기 때문이다.

30년 들여 일군 밤밭에 송전선이 지나가는 바람에 밤농사를 못 짓게 된 경우 보상금이 154만원이라고 한다. 시가로는 1억5000만원에 이르는 땅이다. 퇴직금을 비롯해 재산을 죄다 털어 마련한, 시가로 3억원이 넘는 집과 땅의 경우는 700만원에 보상해주겠다고 한다.

문제는 지역이다. 서울 강남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세상이 바로 온통 뒤집어졌겠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 사는 농민들한테 벌어진 일이다 보니 세상은 조용하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왜 생겼을까? 밀양에만 69개 송전탑이 들어서게 되는 76만5000볼트 송전선로 공사는 핵발전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가동 중인 핵발전소는 21기이고 5기가 건설하는 중이며 여기에 6기를 더 세우려고 한다.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에 1~4호기, 신고리 1호기가 가동 중이고, 신고리 2~4호기가 건설 중이고 앞으로 6호기까지 더 세우려 한다. 여기에 핵발전소가 집중되면서 적어도 5~6호기가 들어서면 새로운 송전선로가 필요해진다. 바로 이 신고리 5~6호기 때문에 이 문제가 불거졌다.

신고리 5~6호기를 세우지 않으면 이번 송전탑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그러나 사람이 모여 살면 전기를 쓸 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좋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자.

문제는 형평이다. 한전이 처음에는 이 송전탑을 통해 수도권까지 전기를 갖다 나를 것이라 했다. 물론 요즘 들어와서는 영남권에만 공급한다고 말을 바꾸긴 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그리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전기를 많이 쓴다. 이번에 분신 자살한 어르신이 살던 데와 같은 시골과 견주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도 타지 않고, 헤어드라이어도 쓰지 않고, 온풍기나 에어컨을 틀어대는 건물에도 머물지 않는다. 날마다 물을 데워 목욕을 하지도 않고 비데도 쓰지 않으며 김치냉장고도 따로 가동하지 않는다. 고작해야 전기 장판 정도 쓴다.

그래 핵발전소, 어쩔 수 없다고 치자. 다만 형평만 맞추면 된다. 형평을 맞추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핵발전소를 전기가 필요한 지역에 세우는 것이다.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 엄청난 전기가 필요하면 바로 거기에 핵발전소를 지으면 된다. 그러면 송전탑이 이토록 많을 까닭이 없다. 혜택은 도시가 누리는데 고통은 왜 시골이 옴팡 뒤집어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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